여자는 분명 뒤로 걸었고, 자신이 뒤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밝혔다. 그런데 여자를 좀 안다는 한 남자가 주장했다. 내가 아는 한 그 여자는 결코 뒤로 걷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가 앞으로 걷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증언했다. 그렇다면 여자는 거짓말을 한 것일까. 여자는 자신이 뒤로 걷고 있다는 사실이 참임을 입증해야 할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갑자기 당혹스러웠다.
사실 남자의 증언은 단지 문자 그대로 자신이 본 사실에 대해, 그 이상의 어떤 의미 부여도 하지 않은, 담백한 증언일 뿐이었지만, 여자에게 이 증언은 뜻밖의 사건으로 다가왔다. 여자는 누구도 자신이 뒤로 걷는 것을 의심치 않을 거라 여겼다.분명 자신은 뒤로 걷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그렇다면자신이뒤로 걸어온 길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일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그랬다. 분명 뒤로 걸었다. 그러나 길은 한 방향으로만 향해있는 직선이 아니었다.나무의 나이테처럼 뱅그르르 도는 곡선이었다. 늦가을 나무가 잎을 떨군 채 겨울을 보낸 후 새봄을 맞아 싹을 틔우듯 여자의 뒤로 걷기는 변곡점을 지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또한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누군가에겐 뒤로 걷는 길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로 보일 수도 있었다.문득 여자는 '뒤로 걷는다'는 말속에 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온 자신의 오랜 버릇을 읽었다. 그랬다. 읽는 일은 풀려나는 길이기도 했다. 이젠 어떻게 읽혀도 좋다.
다만 여자는 자신이 뒤로 걷는여자이고,뒤로 걷는 기쁨에 대해오래 말할 수 있길 바랐다. 뒤로 걷기는 여자에게 가장 익숙한 삶의 방식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