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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Oct 02. 2024

동피랑으로 간 도도

뒤로 걷는 여자

동피랑으로 간 도도        

  

 1.


 하늘에서 뚝

 감 떨어지는 소리

 감 모르는 소리

 그렇게 기적을 바랬어

 전생과 후생이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달하게 감 떨어지길 바랬어

 하늘은 멀고 까마득히 멀고

 까마귀만 귓전을 뱅뱅 돌고  

    

 이젠 동피랑으로 갈 테야

 살 만하지 않은 내가 산만한 너와 동피랑으로 갈테야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가 올 거야

 향유고래와 포도주는 덤일 거야

 물 위를 나는 기적이 거기 있을 거야

 그런대로 괜찮은 생일 거야

 가끔은 빨래를 할 거야

 붉은 햇살에 물고기를 널고  

 도란도란 동피랑에서 빨래를 구울 거야

 굶지 않을 만큼의 죄와 이웃할 거야   


        

 2.


 굴에서 잠만 자던 소녀가 눈을 떴대

 굴 밖으로 나왔대

 반짝 싱그러운 풀이 멱살을 잡더래

 코끼리가 간지럽게 키스하자고 했대

 아마 아마 아름다울 거라고 동피랑에선

 코끼리를 한 움큼 집어먹은 풀이

 향유고래와 포도주를 마시더라나     

 (설마, 그걸 믿었다고?)

 기적이 아가리를 벌리고선 딱

 이제 그만 아가리 속으로 들어오라더래

 감 떨어지는 소리를 기대했던 죄라나     


 (코끼리를 한 움큼 집어먹은 풀이 말하길,)

 넌 배가 고파 죽을 거야 곧 죽을 거야 그래도 넌 웃을 거야 네 눈은 울어도 네 이는 웃을 거야 푸른 파도가 치고 침묵하던 네 입속에선 벌레가 기어 나올 거야 파란 벌레가 기어 나오고 잘근잘근 네 혀를 씹을 거야 히죽이죽 네 살점을 씹을 거야 가지런하던 입술은 이제 안녕이라고 말할 거야 오래도록 잠잠했던 네 입술이 한바탕 꺼이꺼이 울 거야 푸른 파도가 치고 파란 벌레가 기어 나오고 잘근잘근 씹힌 혀들이 묵은 살점을 토해내고 나면, 그래, 넌 마침내 환하게 웃을 거야 해방을 기뻐할 거야    

 

 (고래 뱃속에서 도도가 말하길,)

 아빠 아파요 헤아릴 수 없이 오래, 오랫동안 이가 아팠어요 아빠의 생일날 내 미역국엔 미끈덩 이가 빠졌어요 아빠의 미역국은 애간장에 녹았고요 시큰거리던 이가 미역국이 아프대요 아빠의 관절에선 쉭쉭, 바람 소리가 나고요 어제는 묻지 않은 질문이 오늘 관절을 쳐요 머리가 날다가 곤두박질쳐요 거꾸로 솟구쳐 물구나무를 서요 나무에 피가 열리고 노래가 장난을 쳐요 아빠를 툭툭 쳐요, 쳐요, 피아노를 쳐요 손마디가 시큰거리도록 아빠를 쳐요 쳐요, 노래를 쳐요 발바닥이 미끈거릴 때까지 아빠를 쳐요 정강이의 털이 한 움큼 빠지고, 빠진 털이 고소해요 수챗구멍에선 피리소리 들리고요 부지런한 쥐들이 한 움큼 뭉텅뭉텅 먼저 들어가고 게으른 돼지가 뒤를 이어요 필라델피아에선 하멜른의 곡소리가 날고요



 3.


 뾰족구두를 신은 도도가 말해요  

 산을 내려온 도도가요

 하마터면 아빠를 따라 산으로 갈 뻔했어요

 발가락이 썩는 줄도 모르고 무럭무럭 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미역국에 빠진 이가 시큰거리는 줄도 모르고

 라라와 시시를 데리고 산으로 갈 뻔했어요

    

 여기, 한적한 동피랑이 좋아요

 낮은 슬리퍼를 신은 도도가 말해요.

 도레 도레 평온하고 낮은 자리에서  

 도란도란 어질고 낮은 이웃이랑

 가만히 오래  쉴래요

 여기 바다와 하늘이 닿는 동피랑에서

 전생과 후생을 마주한 동피랑에서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죄와만 이웃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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