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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Mar 30. 2021

하와의 노래

부부의 세계 1(소설)



“혼자가 좋지 아니하니 너의 짝을 지어 주겠노라” 엘로힘이 처음 그를 내게 데려온 날, 나는 그의 늠름하고 튼실한 근육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떨렸다. 어둠은 빛을 통해 드러나듯 그를 보고서야 알았다. 아득한 그리움. 그는 가지지 못한 나였다. 아담이 직선이라면 나는 곡선이었고, 아담이 빛나는 태양이라면 나는 은은한 달빛이었다. 그는 나를 여자라 불렀고 나는 그를 남자라 불렀다. 엘로힘. 우린 그의 모습을 나눠 가졌다. 자연이 그의 모든 것을 나눠 가졌듯이. 나는 그가 나와 아담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이 지상에 가득 빛나기를 바란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사랑했다. 생명의 나무는 물론이고 ‘너희가 먹으면 죽게 될 지도 모르니 조심하라’ 일러 준 선악과까지도.  

    

 아담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지만, 나는 다만 ‘조심하라’고. 그렇게 이해했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이라면 그것이 정말 우리를 해하려는 것일 수 있을까. 그가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면 선악과에도 그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여 당신 발밑에 두려 한 게 아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영원 속에 머무르게 될 것이며 그와 같이 자유로울 것이다.      


 사실 나는 선악과의 존재 자체도 종종 잊어버렸다. 내겐 단지 엘로힘이 준 모든 나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 보였으므로. 그러나 아담은 달랐다. 그는 선악과를 두려워했고, 그럴수록 그의 눈길은 거기에 머물렀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더 자주 그것을 향하고 있다는 걸 인식한 날. 간절히 원하면서도 다가서지 못하는 그를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저 열매를 먹고 나면 알게 될 거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는 의심이 너무 많아. 두려워 할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 그렇게 나는 속삭였고, 결국 그와 함께 그것을 먹었다. 그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는 나에게서 온몸을 휘감아 도는 뱀의 영혼이라도 본 것일까?     

 

 엘로힘이 그를 불렀고, 그는 몸을 숨겼다. 나는 숨은 아담을 지켜보았다. “당신이 준 그 여자 때문에 내가 그것을 먹었나이다.” 두려움에 떨며 변명하는 아담. 그렇게 시작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선악과 열매가 아니었다. 나는 기어코 보아 버린 것이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만 같던 그의 건장한 팔과 다리는 사실 자신의 유약함을 가린 허세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는 나를 저주했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 그리고 그는 엘로힘마저 저주했다. 당신이 보낸 저 여자 때문이라고.     


 나는 그가 원하는 걸 주었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이 간절히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는 나를 조종한 것일까? 그가 내 든든한 울타리일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엘로힘을 오직 자애롭고 사랑이 가득한 자로 믿었듯이. 그러나 나는 거기서 발가벗겨진 그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내 뼈 중에 뼈, 살 중에 살"이라 외치며 나를 사랑한다던 그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을까? 그가 나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엘로힘은 왜 내게 그를 데려 온 것일까?    

 

그의 두려움은 이제 내 것이 되었고, 나는 그를 증오했다. 그의 늠름한 팔뚝은 폭압이 되었고, 나는 폭압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약자였다. 나는 피해자였고 내게 그는 박해자일 뿐이었다. 공포는 떨쳐버리려 할수록 끈덕지게 달라붙어 나는 그를 저주하면서도 떠나지 못했다. 뱀처럼 뒤엉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 의심은 어둠 속에 앉아 각자 제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다. 죽음이 꼬리를 무는 이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날까?    


  


**

 '로힘(Elohim)'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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