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의 연애 기간 7년. 내 나이 서른.
아버지는 여자친구와 오래 사귀고 있는데도
결혼 이야기가 없자 늘 궁금해하셨다.
장모님께서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셔서
고생을 엄청나게 한 덕택인지
딸의 결혼은 크게 서두르는 기색이 없으셨다.
매일 사무실이고 집이고 들락거려서 거의 아들처럼 지내는 나였지만
이런 장모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따님과 결혼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는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여자친구 집에 가서 운을 떼 보라고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편하게 장모님, 처제, 여자친구랑 같이 영화를 보는데
‘오~ 나이스 타이밍!’
영화 내용이 마침 가족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슬쩍 지나가는 말로,
“저희 아버지가 며느리 될 사람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숟가락만 들고 오랍니다~ 하하”
일순간 조용하더니 여자친구 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결혼을 일찍 시킬 마음이 없으셨던 장모님 아니던가?
왜 저렇게 좋아하신단 말인가?’
뭔가 이상했지만 그동안 보아온 내가
결코 사윗감으로 싫지는 않으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여자친구 가족이었는데
그날 나의 발언이 있었던 후로
거사는 일사 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한 두 달 만에 상견례 자리가 잡혔고,
두 달 만에 결혼 날짜까지 정해졌다.
그날 결혼하면 잘 살 거라나?
식장이며 웨딩 촬영까지 정말 번개같이 모든 것이 지나갔다.
상견례 자리에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장인어른이 ‘도둑놈‘이라고 하신 거 말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특이사항은 나한테서 오고 있었다.
‘서른.. 아직은 어린 나이.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과연 내가 한 여자와 2세를 낳아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결혼 준비가 되었다는 말인가?
돈도 꼴랑 몇 천 밖에 없지 않은가? 가정이라는 것을 내가 과연...’
우울증이 온 것이었다. 여성들의 산후 우울증, 임신 우울증 같은...
힘이 없고 밥맛도 없었다. 다가올 미래가 겁이 났다.
몸이 떨렸다.
자신이 없었다.
심난했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여자친구를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모든 것을 고백하고
결혼을 좀 늦추면 안 되겠냐고 지금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오히려 잘 견딜 수 있다고 나를 격려했다.
별거 아니라고 힘내라고 한 말이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내 상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뭐 남자가 이렇게 용기가 없어!’
하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어김없이 결혼식 날짜는 다가왔고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당당하게 신부 입장을 했고 만세 삼창을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난 결혼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