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25여 년 전엔 대학교 주변에 찌개 하나 시켜놓고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술집들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지금은 촌스럽지만 술집 이름도 세븐, 레드, 빅토리, 컬트 등
영어로 지어진 술집 이름이 많았다.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의 이름은 ‘세븐‘이었다.
거기서 우리들은 참치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술을 마시며
입대, 이성,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슬슬 겨울이 다가오는 쌀쌀한 바람에
가을 날씨는 뜨거운 국물과 술 한 잔이 생각나게 했다.
나와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고 어김없이 세븐으로 향했다.
그때 당시 찌개 7000원, 소주 2000원의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걷어서 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영수라는 친구가 좀 부유하게 살아서
그 친구가 모자란 술값을 대신 계산할 때가 많았다.
“사장님 참치 김치찌개에 소주 2병이요~”
우린 재잘거리면서 술안주가 나오길 기다렸다.
소주가 먼저 도착하자 성질 급한 녀석들은 강냉이를 안주 삼아
술을 털어 넣었지만 난 그렇게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잠시 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냄비 하나가 올려져 나왔다.
시큼한 김치와 기름진 참치가 잘 어우러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부탄가스를 연결하고 점화 스위치를 돌리는 순간
가스레인지 안에서 새끼손가락 두 마디 만한 바퀴벌레가 기어 나왔다.
바퀴는 물주를 알아봤는지 영수가 앉은 쪽으로 잽싸게 이동했다.
영수는 너무 놀라서
“에헤이~ 뭐야 깜짝이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퀴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지만
여운은 깊게 남아 우리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이구 진짜 크네~”
“뭐야 와 놀래라~”
그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리 한 마리 나오더니
아주 몇십 마리가 떼로 기어 나왔다.
기겁을 한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 아 아악~! ” “뭐야 이게~”
다들 남자들이었지만 바퀴 앞에서는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벌떡 일어나 자리를 피하는 놈,
눈을 감고 있는 놈, 의자 위에 올라가 있는 놈.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한바탕 아수라장을 만든 바퀴들은 재빠르게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쌀쌀한 날씨 꺼진 가스레인지 안.
아직 온기가 남은 그 가스레인지 안은 그들의 안식처였다.
우리는 그들의 안식처를 침범하고 심지어 태우려고 불을 지핀 불청객이었던 것이다.
술맛, 밥맛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순간.
하지만 금세 진정한 친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가스레인지를 교체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세상에!
찌개에 든 것이 참치인가 바퀴인가....
도저히 못 보겠다. 집에나 가자!!!
나는 일찍 술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술값은 안 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