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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by 감자발

98년 어느 여름.


우리 과 20명 정도는 부푼 마음을 품고 대성리로 향했다.

뭐 대학 M.T가 별것이 있으랴~ 그냥 술 먹고 노는 거지~

실컷 취한 와중에 어느 한쪽에서 화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 100 고스톱이었다.

타짜가 있었는지 갖고 있던 돈 3만 원이 게눈 감추듯 없어져 버렸다.


남들 하는 거 구경이나 하다가 파장 분위기에 뒷정리하면서 주인을 모르는 화투장을 챙겼다.

돈은 잃었지만 그거라도 챙기는 게 어디냐 싶었다.


한 놈이 출출했는지 여행용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였는데 끓이고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2~3명이 달려들었다.

2개 정도를 끓이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없어지자 라면을 계속 넣기 시작했다.

이야기도 하면서 소주도 한 잔씩 하면서 20살 한창나이들이라 그런지 술도 라면도 쉴 새 없이 들이켰다.


나중에 봉지 개수를 세어 보니 10봉지가 넘었다.

4명에서 두 당 3개는 먹은 듯했다.


신나게 먹고 놀고 즐기고 하는 중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학교로 돌아와 다시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너무나 피곤했기에 그만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목적지를 알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선반 위에 올려져 있던 가방을 내렸다. 그런데 가방이 기우뚱...


그때 당시 내 가방은 지퍼가 없는 옆으로 메는 가방이었다.

지퍼 없이 앞으로 덮는, 덮개를 뒤로 젖혀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스톰, 닉스라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그런 가방이었다.


가방이 옆으로 쏠리면서 덮개 사이로 내용물이 쏟아지는데....

아뿔싸... 그 내용물은 다름 아닌 화투장이었다.


그것도 돈을 모두 잃고 챙긴 화투장 케이스 두 개....


가방을 빠져나온 화투 케이스 두 개는 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깽~ 바닥과 플라스틱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화투는 사정없이 미끄러졌다.


신기하게도 그림이 없는 빨간색 면으로 두 케이스 모두 미끄러졌다. 샤라라락~~~

순간 당황한 내 얼굴색 역시 화투장!!

앉아서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특히 어르신들은 혀를 끌끌 찼다.

‘그냥 내려야 하나? 와~’


나는 하나하나 천천히 케이스에 담았다.

정리를 끝마치고 ...

어느덧 내려야 하는 역에서 3개 역을 지나쳐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 낄낄 웃는 소리

난 화투장 같은 빨간 얼굴을 하고 처음 보는 역에서 내려 목적지 방향 전철로 재빠르게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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