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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갔을까

by 감자발

“뭐야 왜 없지?”

아무리 찾아봐도 영어책이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 마지막 교양과목 시험이 남아 있었다.

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혹시 내 영어책 너한테 있나?”

“하하 이제 생각이 나셨어? 나한테 있지.”

“아이고 다행이네. 내가 그리 갈까?”

“아냐 내일 애들 모이기로 했어. 우리가 그쪽으로 가지 뭐~ 내일이 니 생일이잖아!”

“시험기간에 생일은 뭐 그냥 내가 가서 책이나 받아 오지 뭐~”

“야 이 자식아. 그래도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생일인데 한잔해야지~

안 그래? 어차피 교양 과목 하나 남았는데 뭐 어때.

토요일에 한잔하고 들어가고 일요일날 공부하면 되는 거 아냐?”

“아니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그럼 그럴까?”


다음날 나 포함 우리 6명은 12시쯤 모였다.

삼촌이 운영하시는 중화요리집에서 각종 요리들을 공짜로 얻어먹고 용돈까지 받아서

PC방으로 직행했다. 모레가 시험인데 이렇게 노는 게 재미있을 줄이야...

한참 신나게 노니 금방 밖이 어둑어둑 해졌다.

다들 그만 나가서 술 한잔하자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처 술집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안주와 소주를 시키고 뭐가 재미있다고 재잘재잘 잘도 떠들었다.

한참 안주발을 세우고 있는데 한 녀석이 말했다.


“게임이나 해서 진 사람 한 잔씩 먹기!!”

“콜~” “가즈아!!”


“오케이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일”, “이”, “짝”, “사”, “오”, “육!!”

아차! 박수를 쳐야 하는데 이놈의 주둥이가 ‘육’을 외치고 말았다.

한 잔 쭈욱 들이켜고 다시 게임을 이어갔다.


“삼!”

이런 바보가 있나! 또 한잔 마셨다.

게임을 처음 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자주 걸리는 일이 없었는데 소주 한 병을 내리 마신 것 같았다.

결국에 난 또 만취가 되었다. 어쩐지 술술 들어간다 했더니..

난 그 술집에서 그냥 뻗어 버렸다. 희미하게 녀석들이 목소리가 들렸다.


“야! 자발이 좀 부축해 봐~”

“아 나 진짜. 이 새끼!!”


분명히 6명이 같이 놀았는데 내 옆엔 영수와 덕기만이 남아있었다.

나를 부축하고 가까스로 같이 버스를 탔는데 속이 또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길거리에다 빈대떡 몇 장을 붙여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신물이 넘어오고 있었다.

‘우~ 우욱‘ 손으로 틀어막고 있으려니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저거 어째~ 이 휴지라도 써요~”

덕기가 한걸음에 달려가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여행용 휴지를 받아왔다.


“우~ 웨엑~”

다행히 버스 바닥에 쏟아지기 전에 덕기가 자신의 손과 휴지를 이용해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부족했는지 봉지에서 계속 휴지를 뽑아댔다. 휴지 한 봉지가 금세 동이 났다.

한참이 지난 후 우리는 버스에서 쫓기듯 내렸고 두 녀석은 양쪽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나를 부축해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녀석들이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신이 살짝 돌아왔을 즈음 저 앞에 우리 집 대문이 보였다.

나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고생 했으... 이제 그만 가봐라아~ 으읍.”

마지막 힘을 짜내 이제 그만 가라고 인사했다.

녀석들은 이제야 홀가분한 표정으로 나를 팽개치듯 놔주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엇이 스쳤고 돌아서는 영수의 팔목을 잡았다.


“뭐야? 으윽 또 토하려고?”

“야..... 채 액.....”

“뭐라고 그러는 거야! 이 자식아 얼른 들어가서 자라. 그만 토하고 엉?”

“채....”

“채가 뭐야~~~~”

“영어... 영어책!!! 이 새끼야!!!”

난 마지막 힘을 짜내서 소리쳤다.


“뭐라고!!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두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바탕 웃었다.

한참을 웃더니 가방에서 영어책을 꺼내 내 겨드랑이 사이에 꽂았다.


“정말 대단한 놈이네 저 지경에서 책을 달라니... 와 진짜 왜 서울대를 못 갔냐?”

멀어지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작 좀 먹어라! 아휴~ 죽으려고 작정을 했나!”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 책 좀 챙겨줘요... 어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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