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날 부모님과 같이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전역도 했으니 복학하기 전까지 학비 마련하려면 아르바이트 좀 해야지”
“예 그래야죠~ ”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올 것이 왔다. 전역과 동시에...
생활력 강하신 우리 어마마마께서 아들이 빈둥 대는 꼴을 보고 계실리가 없지 않은가.
‘명문대에 진학을 했더라면 중, 고등학생들 과외나 하면서 학비를 마련할 텐데..
어디 공장이나 들어가야 하나?’
내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귀신이 바로 어머니였다.
“그럴 줄 알고 시장통에 있는 공장에 미리 말해 두었어. 내일부터 출근하면 된다~”
“네 뭐라고요 엄마~ 나 오늘 전역했어요~ 하..”
‘이럴 수가!’
“그러니깐 더더욱 출근해야지~”
“아~~ 예앱! 단결!!”
큰소리로 대답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같이 전역 기념으로 술을 한잔했다.
아버지는 막걸리, 나는 소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군대 이야기, 또 세상 사는 이야기.
남자 둘이 자신들의 군대 이야기가 시작되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참을 마시다 아버지는 먼저 일어나셨고
나는 혼자 거실에서 간만에 밤늦도록 마음껏 티비를 보았다.
“자발아~ 일어나야지~ 자발아~”
커튼을 열어젖히자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어머니는 바가지에 찬물을 떠오셔서
얼굴이며 몸이며 손으로 물을 끼얹으며 말씀하셨다.
“기상! 기상!”
“아 차거~ 에헤이 옷 젖어요!”
‘기상 기상이라고? 난 전역했는데... 아 오늘 출근이구나~’
일어나서 대충 밥을 먹고 공장으로 향했다.
시장통에 있는 허름 한 창고.
다 쓰러져 가는 슬라브 지붕의 건물, 기름 냄새, 담배 냄새.
그 안에 나이 드신 사장, 공장장, 아주머니들 네 분.
딱 봐도 술에 취해있는 아저씨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우리 공장에서 일하게 된 감군이외다. 잘 챙겨 주소~”
“잘 부탁드립니다.”
공장장하고 인사를 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난 선반(가공기계) 앞에 서 있었고 공장장이 세팅이 끝나면
가르쳐 준 대로 선반을 움직이고 돌리며 제품을 만들었다.
별 특별한 기술이 없던 나는 하루 2만 원이라는 일당을 받으며 일했다.
며칠 하니 적응이 되었고 굉장히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일도 배울 수 있었다.
공장장님은 꼬장꼬장하시며 일을 잘 하셨다. 배울 점도 많았다.
문제는 한 어르신이었는데...
그분은 술을 너무 좋아하셨다.
특히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시면서 반주로 유리컵에 소주 반 병을 드리 부으며 원샷을 하셨다.
저렇게 드시고 일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여러 가지 칼날과 드릴이 난무하는 공장 안에서
저렇게 취한 채로 작업을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지 않은가!!
아침에만 멀쩡한 얼굴이지 퇴근하실 때는 얼굴도 벌겋고 술 냄새도 코를 찔렀다.
공장장은 늘 그분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그냥 술이나 먹고 있지 누굴 죽이려고 출근을...”
그분을 해고시키지 않는 사장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랑 같은 일당에 근무를 하신다고...
사장님은 카페인 중독이셨다.
하루에 몇 잔을 드시는지 셀 수도 없이 믹스 커피를 마셨다.
거기다 박카스를 엄청 좋아하셔서 물보다 더 많이 드시는 것 같았다.
완성된 제품을 포장 분리 마무리하는 것은 아주머니 네 분이 맡으셨는데
가끔 제품을 운반해 드리러 가면
“감군, 여자친구는 있어? 뽀뽀는 해 봤고?”
하면서 말을 거시고는 본인들의 연예 경험담을 열거하셨는데
별로 듣기도 싫은 실없고 역겨운 농담들뿐이었다.
공장장님이 가르쳐 주신 작업 기술 외에는 전혀 배울 것이 없었다.
작업 또한 거의 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기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으므로 문제는 없었다.
목은 충분히 풀 수 있었고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를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일을 하게 되자 사장님이 월급이라며 60만 원을 주시면서
“감군, 한 달 동안 일하는 걸 봤는데. 정말 맘에 들어 ! 손도 빠르고 말이야~
본격적으로 내 밑에서 부사장이 될 생각으로 한번 제대로 일해 볼 생각은 없나?”
“예 부사장이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부사장이라니 대단해 보였지만
여기에서 더 근무를 했다가는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죄다 전화를 돌렸다.
다들 본인 코가 석 자라 날 소개해 주고 말고 할 여력이 없었다.
일당도 고만고만했다.
결국 포기하고 죽기 보다 싫었지만 참고 보름을 더 견뎠다.
전화가 왔다.
돌이였다.
“어이 자발이~ 25000원 콜?”
“오 마이 갓!!! 당연히 콜이지! 고맙다. 돌아~”
‘으아~ 감사합니다.’
일당도 25프로 상승에 또래 애들과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난 그날로 다 쓰러져가는 공장을 탈출하였고
다음 날 친구가 일하는 물류 창고로 신나게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