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투력측정

by 감자발

“감병장님! PX 같이 가시겠습니까?”

“뭐 PX ?”

“예, 그렇습니다.”

“최상병은 어디 갔는데? 니 지킴이는 최상병이잖아?”

“예 근무 나갔습니다.”


황금 같은 일요일 후임병 여자친구가 소대로 보내온 어마어마한 초코파이 상자 안에

초코파이를 까서 먹으며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를 보고 있는데 얼마 전 휴가를 복귀한

조이병이 PX에 가자고 했다.

PX는 군용 편의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매우 귀찮아하자


“같이 가시지 말입니다. 휴가 복귀도 했는데 전투력 측정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천상병이 거들었다.


“야. 이자식아! 전투력 측정을 무슨 PX에 가서 하나? 아 그거!? 후후”


그 당시 휴가 복귀한 전우들이 챙겨온 용돈으로 PX에 가서 과자며 냉동식품이며 빵이며

잔뜩 사서 소대원들이 실컷 먹이는 뭐 그런 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 가혹행위였지만 그 당시 자의반 타의 반으로 으레 행해지고 있었다.

전투력은 누가 얼마나 비싸고 맛있는 먹거리를 많이 사느냐에 따라 높게 측정되었다.


이등병한테는 소대 적응을 빨리할 수 있도록 상병급을 지킴이로 지정했다.

특히 PX를 갈 때는 지킴이 포함 3인이 1조로 같이 가야 했다.

조이병은 지킴이가 없으니 나한테 와서 물어본 것이었다.


“뭐 가던가? 참고로 난 돈이 없어~”

농담이 아니고 진짜 돈이 없었다. 아무튼 우리 셋은 PX로 향했다.


“하나~ 두울~ 셋~ 넷! 하나둘셋넷. 이동 간에 군가한다! 군가는 멋진 사나이!! 하나 두울 셋 넷!!”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PX에 도착해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천상병과 조이병은 먹거리를 이거저거 둘러보고 있었다.

한 10분 기다리니 탁자에 먹거리가 제법 놓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고가의 먹거리가 먹을 만은 했다.

그러나 양이 차지 않은 나는 지나가는 말로


“맛은 있는데 양이 너무 적다~ 음식이 너무 모자라다!! 전투력이 형편없구먼~”


조이병이 어쩔 줄을 몰라 하자 천상병이 물었다.


“하하 감 병장님 맥주 한잔하시겠습니까?”

"어허 좋지~"


우리 셋은 충성클럽에 들어가 마른안주에 맥주 한 잔씩 마시고 기분 좋게 소대로 복귀했다.


얼마 후 대대 단위로 체육 대회를 하고 연병장에 모여 대대장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 당시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 ’가슴을 열어라‘ 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이 코너는 학생들이 옥상에 올라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친구나 선생님께 마음껏 표현하면서

큰 소릴 질러대는 코너였다. 대대장님은 그걸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하실 참이었다.


곧 대대장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이 시간은 너희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시원하게 털어놓는 시간이다.

누구든 단상 위에 올라와서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고 들어가도록~

누구 욕을 해도 지금은 문제 삼지 않겠다."


전우들은 하나둘 올라가서 여자친구, 부모님, 선임병, 소대장 등등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출하며 마음껏 욕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리 중대, 우리 소대에 조이병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얼마전 같이 PX를 다녀온 그 녀석이었다.

우리 소대는 와아~ 하면서 박수를 치고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감자발 병장님~~ 정말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엥 뭐지 저자식?'

“감자발 병장님! 얼마전 같이 PX에 가신 적이 있으시지 말입니다?

이등병이 돈이 얼마나 많다고 얻어 드십니까?

그게 무슨 전투력 측정입니까? 그냥 쏘라고 부추긴 거 아닙니까?”

'지가 가자고 해 놓고 뭔 소리?'


주위는 웅성대고 전우들은 우리 소대 쪽을 쳐다봤다.

난 슬며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전투모를 벗었다.

그리고 전투모로 가슴에 새겨진 이름을 가렸다.


“그리고 제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다 드시고는 '음식이 모자라' 하셨는데

무슨 병장이 PX 주전부리를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이 드셔야 만족을 하시는 겁니까?

안되겠습니다!! 저도 한번 얻어먹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사드린 거에 두 배로 사주시지 말입니다!!”


와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대대장님은 씽긋 웃으시더니


“감병장이 누구야!!”

“병장! 감자발!!"

나는 관등성명을 대며 일어났다.


"야 이 짜샤! 얻어만 먹지 말고 좀 사줘라~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그래 어이 조이병! 감병장이 사준다고 약속했으니 받아먹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언제부터 계획을 한 것이더냐! 이 자식아~'


홍당무가 된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소대로 복귀한 나는 조이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굴을 보자마자 아구창을 돌리고 싶었지만 ’전역도 얼마 안 남은 마당에 그러면 무엇 하리‘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조이병을 데리고 PX로 가서 원 없이 아주 원 없이 먹거리를 사주었다. 먹다가 배가 터지도록...

음식이 많이 남자 내가 소리쳤다.


"어쭈~ 음식을 남겨 이자식 봐라~ 조이병 음식을 든다 실시!! 실시!! 입에 집어넣는다 실시!! 실시!

어라 손이 보인다 손이 보여!!! 동작 봐라! 이거 군기가 빠져가지고 어!"

"잘못했습니다. 감병장님~"

"잘못은 뭐 두 배로 사달라고 했는데... 어디 실컷 먹어 보려무나!! 봉지를 깐다 실시!"



KakaoTalk_20251026_141316257.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