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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가는 길

by 감자발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몇 개월 후...

영장이 날아왔다.

같은 과 동기들, 고등학교 동창들, 중학교 동창들을 차례로 만났고

한동안 할 수 없는 유흥을 즐겼다.

입대 날짜는 어김없이 내일로 다가왔다.

머릴 짧게 자르고 아버지와 저녁에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소주 한 잔 들이켜는데 무척이나 썼다.

뭔가 답답하기도, 설레기도, 아쉽기도한 99년 3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다음날 아버지와 논산행 버스에 올랐다.

혼자 가겠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기어이 데려다주겠다고 하시고는 같이 버스를 타셨다.

아버지와 나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논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그날

그렇게 좋아하시던 본인의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내가 유격대 조교였는데 말이야~~”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끝도 없었는데 어제오늘은 조용하셨다.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셨다.

아들이 군대를 간다니 새삼 마음이 무거우셨나 보다.

훈련소 근처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훈련소 주변에 사람들도 그득했다.

유명인이 입소를 하는지 여기저기 방송국 카메라도 많이 보였다.

아버지와 나는 연병장 테두리에 있는 계단에 서 있었다.


“자 훈련소로 입소하신 분들은 이제 가족, 친구분과 작별할 시간입니다~”

연병장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가족 친구분들을 바라봅니다. 차렷! 경례! 충~성~!

경례를 마친 훈련병들은 신속하게 연병장으로 집합합니다.!!”


난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설픈 경례를 하고 뒤돌아 연병장으로 뛰어갔다.

많은 훈령병들이 연병장에 집합하자

다시 한번 가족 친구들한테 인사를 시키더니 두 줄로 큰 막사 뒤편으로 이동시켰다.

큰 막사 뒤로 이동시키자 더 이상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줄 제대로 맞춥니다! 정신 차립니다! 이제 여러분은 군인입니다!”

줄을 그래도 못 맞추자 조교는 소리쳤다.

“어쭈 ! 이것들 봐라~ 줄 똑바로 못 맞춰!!! 안되겠네~ 어깨동무 실시 실시!!”

어설프게 어깨동무를 한 훈련병들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앉아! 일어나! 앉아! 일어나! 동작 딱딱 못 맞추지 ! 앉아! 일어나!!”

조교에 구령에 맞춰서 훈련병들은 마치 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웰 컴 투 헬이다!! 이놈들아!!”

조교는 신이 난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막사로 간 훈련병들은 또다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전투복 전투모 등 간단한 개인 물품을 지급받았다.


“자 주목 여러 번 설명 안 한다.

전투복은 이렇게 입고 전투화 끈을 매는 요령은...

뭐야! 거기 집중 안 하지! 이 자식 봐라 그래 너!”

나였다. 집중을 안 하고 창문 밖을 보다가 딱 걸린 것이었다.


“예~”

“그래 너 어디 보고 있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대가리 박아!!!”


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렸다. 두 손은 뒷짐을 진 상태였다.

난생처음 하는 자세지만 이상하게 잘 되었다.


“정신 차리고 집중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자세 바로 하고 설명 잘 듣도록~”


겁만 주려고 한 건지 자세가 너무 FM이라 놀란 건지

조교는 자세를 금방 풀어 주었다.

설명을 듣고 전투복으로 환복을 한 나는

입고 온 옷과 가져온 가방 등을 상자에 잘 포장했다.

집으로 다시 돌려보낼 것들이었다.

그렇게 난 훈련병이 되었다.


그날 아버지는 TV에 나오셨다.

경례를 하고 연병장으로 뛰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울면서 눈물을 닦는 모습이 9시 뉴스에 나온 것이다.

아마도 본인이 경험했던 군 생활과 여러 감정들이 눈물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를 알아본 지인과 친척들한테 무수히 많은 전화를 받으셨다고 한다.

심지어 연말에 군 입대 관련 뉴스를 했는데 또 한 번 그 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 장면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어떤 모습이셨을지 상상이 간다...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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