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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고

by 감자발

전역 전날.

2년 2개월의 마지막 취침 소등.

하지만 다시 불을 켠 소대원들은 마지막 가는 병장의 머리를 깨부수려 달려들었다.

”와~“ ”종 때리자!!!“

몇 명이 동시에 일어나더니 내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종을 치는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간 종이었다.

내 몸은 공중에 붕 떠 있었다.

다른 한 녀석에 전투용 헬멧(일명 하이바)를 손에 들고 내 머릴 후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팔 다리를 각각 잡은 녀석들은 나를 바이킹 하듯 흔들었고 그 박자에 맞춰 하이바는 춤을

추며 내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따악~ 하나~“

”따악~ 둘~“

”따악~ 셋~“


전역의 고통은 너무도 가혹했다. 우리 소대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중대안에 5개 소대를 다 돌면서 종을 맞아야 했다.

어느 정도 장난으로 하는 의식이었는데......

마지막 3소대에 들어서니 어떤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무시한 힘으로 내 머릴 갈겼다.

눈을 꾹 감고 3대를 다 맞은 나는 소리 질렀다.


”어떤 개새끼야!!!“

3소대 문을 걷어 차고 난리 난리를 쳤지만 그 녀석은 벌써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난 뒤였다.

내일이면 민간인이 되는 최고 선임의 카리스마는 이미 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간 뒤였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그 녀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15대의 종을 맞고 혹 위에 혹이 또 난 형상이 되어 의식은 마무리가 되었다.


’어느 정도 장난으로 할 의식을 죽자고 후려치다니 그것도 같은 소대도 아닌

다른 소대 녀석이... 후~ 이자식 잡히기만 해 봐라~‘


내일 전역인데 뭐 어쩌겠는가? 참아야지.

전역 한 후에도 그 당시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그 분은 쉽게 가라앉혀지지가 않았다.

2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그 3소대 박우종 이 새끼야! 꼭 한번 보자! 수박을 쪼개버릴 테니까 아주 그냥!‘


혹을 어루만지며 침상에 누웠는데 일직부관인 소대 후임이 마이크를 틀면서

잔잔히 읊조렸다.


-감 병장님! 서운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거지~ 결코 병장님이 싫거나 그래서 그런 것

아닙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내일 전역 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함께 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으며

소대에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버지.. 단결!!-


딱 1년 차이의 같은 달인 선임병을 그때는 아버지라고 불렀다.

부관의 말이 끝나고 소대에 작은 오디오에서는 가수 윤도현의 한국 락 다시 부르기라는

앨범에 있는 ’너를 보내고‘ 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그 시절 가장 즐겨들었던 노래였다.

아까의 분노와 통증이 조금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전역하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막상 내일 전역하려 하니

후련함인지 아련함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하고 있었다.


다음날 중대장에게 전역 신고를 하고

중대 앞에서 소대원들은 나를 하늘로 던져 버릴 듯 높이 던지며 헹가래를 쳤다.

전투모가 바닥에 떨어져 다시 고쳐 쓰는데 어제의 혹이 아직도 찡했다.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고 위병소를 나오는데 저 멀리서 누가 뛰어오는 것이었다.


”감병장님 이거 가져가셔야죠~“

”이걸 내가 왜 가져가 내 것도 아닌데...“

”제꺼긴 한데 감 병장님이 많이 좋아하신 앨범이니 드리겠습니다. 선물입니다.“

“어 이자식... 고마워~”

“안녕히 가십시오~ 단결!!”


난 윤도현 앨범을 받아들고 뒤돌아 달려가는 이 일병을 쳐다봤다.

또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안녕이다~

다 늘어져 버린 카세트 테이프 였지만 너무도 값진 선물에 난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위병소 앞에는 작은 중화요리집이 있었다.

오늘같이 휴가를 떠나는 다른 소대 후임들과 식사를 위해 들렀다.

짬뽕, 짜장, 탕수육 펼쳐지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다가

부대 앞 마지막 식사를 기념하기 위해 소주잔에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감병장님 전역을 축하드립니다.”

“전역을 하시니 기분이 좋으십니까?”

아직 1년 가까이 군 생활이 남은 녀석들이라 전역하는 것이 내내 부러웠던 모양이다.


“글쎄~ 무조건 전역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 전쟁이지 않을까? 복학해야지,

그전에 알바라도 해서 학비도 보태야지, 운전면허증도 따야지, 여자친구도 한번 사귀어 봐야지

돈이 들 일이 엄청나지 않을까? 집이 빵 빵 한 것도 아니고 보탬이 돼야지. 매일 규칙적으로

기상하고 규칙적으로 잠들면서 밖에 생각 안 하고 자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전역 후 이쪽으로는 소변도 안 본다는 사람이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말하면서도 이상했지만 술기운에 그냥 지껄여 댔다.

자리가 끝나고 내가 계산을 하려고 하자 녀석들이 감병장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며

기어코 서로 낸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그 정도면 내야지 암..‘

둘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밖으로 나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화천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시내에 도착하자 각자 목적지 대로 우린 헤어졌다.

나는 청량리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군인 전용 TMO 열차 티켓을 수령하고

청량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청량리역에서 인천으로 가기 위해 나는 전철로 갈아탔다.

집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랜만에 내방 침대에 누웠다.


헌데 뭔가 허전했다. 지갑 이상무! 시계 이상무! 뭔가 허전한데....

아아아아~~

가방!! 전역을 하면서 들고나온 작은 가방이 없어진 것이었다.

군생활 하면서 찍은 사진들, 일기가 쓰여진 수첩, 후임병들이 써 준 편지,

이일병의 카세트 테이프까지...

어디서 놓친 것인가?

술을 먹고 깜빡하고 어디다가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아아아~ 제기랄!!!


나의 2년 2개월 군생활의 흔적이 훨훨~ 하늘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너를 보냈다. 가방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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