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죽고 못 사는 시절이 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주말에 TV를 보다가 드라마 중간에 주인공이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이 나왔다.
군침이 돌고 갑자기 허기를 참을 길이 없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는 눈치를 살폈다.
‘동생아 끓여라 형님이 맛있게 먹어 줄 테니...’
‘형이 동생을 맨날 부려 먹냐! 한번 끓여봐라 좀!!’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번엔 내가 참지 못했다.
못 참는 놈이 먼저 라면 봉지를 뜯고 냄비에 물을 부었다.
라면 봉지 뒤에 쓰여있는 설명 그대로 따라 하며 정성스럽게 라면을 끓였다.
무심코 지나치지만 그 설명서에 써있는 그대로가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일 수 있는 비법이었다.
마지막 미리 풀어 두었던 계란으로 마무리 지으면 완성이었다.
부엌에 라면은 3봉지밖에 없었다.
식욕이 폭발하던 시기 둘이 실컷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굉장한 라면 전쟁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밥상 가운데 라면이 놓여 있고 옆에는 깍두기.
나와 동생 앞에 빈 대접이 놓여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라면에 젓가락을 넣고 면발을 들어 올렸다.
난 면만 건지는 공략을 펼쳤다.
국물이 들어가면 너무 뜨거워서 면치기를 할 때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국물까지 국자로 퍼서 대접에 담았다.
엄청난 속도로 우린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쩝쩝”
아무 대화도 없이 먹기 시작한 우리의 시선은 비워져 가는 라면 냄비에 고정되어 있었다.
국물을 담았는데도 엄청난 속도로 비워지는 동생의 라면 대접.
국물 없이 먹는 나의 속도와 거의 비슷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정도 양이면 내가 좀 빠르다!
이 속도면 내가 마지막 라면을 먹을 수 있겠어!’
한 번씩 퍼가는 양과 냄비 안에 라면의 양을 정확히 계산한 나의 머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정확히 세 번 정도 퍼갈 양이고 내가 먼저 퍼가고 동생이 퍼가면 마지막은 내가 퍼갈 수가 있었다.
내가 먼저 대접에 라면을 펐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부엌으로 가서 매우 큰 대접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냄비에 있는 라면을 죄다 싹 쓸어서 부어 버렸다.
“아놔 이 자식이!!!”
난 벌떡 일어섰고 앉아서 면치기를 하는 동생의 멱살을 틀어쥐고 일으켜 세웠다.
“뭐하냐 지금?”
“뭐가 왜 왜 왜!!”
대드는 동생의 얼굴에 내 주먹이 날아갔고 입안의 라면이 사방으로 튀었다.
울고 있는 동생을 뒤로 한 채 라면을 먹으려고 앉는 찰나.
동생은 욕을 하며 방바닥을 향해 힘껏 숟가락을 던졌다.
“다 쳐먹어라!!”
“아 아악~”
그건 방바닥이 아니고 정확히 내 엄지발가락에 날아와 꽂혔다.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데 그사이 동생은 라면을 다 섭취해 버렸다.
바로 그때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심하게 꾸중을 들었지만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형제끼리 양보는 못할망정 더 먹겠다고 이 난리야?”
생각해 보니 그냥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내 발을 살폈더니 엄지발은 두 개가 되어 있었다.
엄지발의 멍이 빠지기까지는 상당 기간 시간이 걸렸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발이 감자발이 된 것이...
라면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