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

by 감자발

어렸을 때 윗동네에 부자 친구 정민이가 살고 있었다.

그 친구 집은 동네에서 꽤 나 큰 집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사업하시는 분이셨고 어머니는 대학교수셨다.

우리 집은 큰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에 월세를 살고 있었으니

그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아침마다 마당 수돗가에 있는 단 하나의 화장실을 쓰느라 모두들 난리가 아니었다.

한번은 정민이네 집에 게임을 하러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오락실에서만 하던 게임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정민이 어머님이 인터폰으로 대답하셨다.


”어서 오렴~ 들어와~“

정민이를 뒤따라 들어갔고 앞에 펼쳐진 집안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즐비했고 식탁이며 각종 전자 제품.

이층으로 이어지는 S자 계단까지...

하나하나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고 모든 것이 새로웠고 놀라웠다.

특히 거실 탁자에 있는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는데 우리 집 전화기랑은 차원이 달랐다.

우리 집 전화기는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돌리는 다이얼 식이었는데

정민이네 전화기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면 되는 처음 보는 디자인이었다.

주방에는 난생처음 보는 대형 냉장고, 전자레인지라는 것도 있었다

우리 집 부엌과는 많이 달랐다.

식탁 위에 놓인 상자에서 내용물을 꺼낸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먹어 볼래?“

”그게 뭐예요? 빵이에요?“

”호호 빵은 빵인데 케이크 같은 거야 롤케이크라는 건데 한번 먹어 보렴~“

아주머니는 접시에 덜어 주셨다.

포크로 한 조각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는데 이건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었다.


’이럴 수가! 너무 맛있잖아!!‘

내가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자 아주머니는 더 주셨다.

롤케이크의 반을 내가 먹은듯했다.

다 먹고 나서 정민이의 방으로 향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침대에 고급 책상에.

난 또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작은 티비에 가정용 게임기를 연결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처음 만져 보는 게임기지만 어머니한테 혼쭐이 나면서 다닌 오락실 덕에 금방 익숙해졌다.

정민이는 게임을 너무 못했기에 나만 눈에 불을 켜고 열중했다.

한두 시간 신나게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얘들아 그만하고 나오렴 눈 나빠진다~“

또 하고 싶었지만 내 오락기가 아니었기에 집주인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정민이와 나는 나가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옥수수 대 여섯 개를 바구니에 들고 오시면서 말했다.


”자~ 우리 구구단 퀴즈 하자! 빨리 손들고 대답하는 사람한테 옥수수 열 알씩 줄게~"

’역시 교수님이라 틀리시구나~ 옥수수를 먹는데도 게임을 하다니!‘


아주머니는 미리 떼어낸 옥수수 열 알을 손에 쥐고 구구단 퀴즈를 내기 시작하셨다.


”자 칠팔에?“


정민이가 주춤할 때 난 손을 번쩍 들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지목하자 나는 힘껏 외쳤다.


”오십육!“

내 입안으로 들어온 옥수수 열 알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뉴슈가의 맛인지 설탕의 맛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승부욕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맛이었다.


”팔육?“

”사십팔“

”구육에?“

”오십사“

”칠칠에?“

”사십구!“


옥수수 세 개의 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정민이는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아니 내가 너무 빨랐다. 생각도 생각이지만 손을 드는 속도 차이도 승패를 좌우했다.

집에서 어머니한테 밥상 앞에 앉아 손바닥을 맞고 울며 외우던 구구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의 완승이었다. 더 이상의 게임은 의미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얄미운 듯이 날 쳐다보며,


”너무 잘하는데 진짜~ 대단하다.“

옆에서 정민이는 시무룩해졌다.

진수성찬의 저녁식사까지 얻어먹고 인사를 90도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너무 즐거운 경험을 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 뒤로는 웬일인지 정민이는 나를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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