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류

by 감자발

20대 초 젊은 열정의 땀방울로 탄생 시킨 한 달 알바월급 110만원.

100만 원은 적금으로, 5만 원은 교통비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내겐 아직 5만 원이라는 돈이 남아 있다.

카드가 없었던 그 시절, 현금을 들고 집 근처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슬리퍼에 헐렁한 츄리닝, 그리고 브랜드 불명의 슬리퍼는 나를 한없이 편안하게 만든다.

시장에 모든 잡화상들은 구경에 몰두하는 나의 눈을 더욱 크게 만들고

여기저기에서 풍기는 여러 가지 맛난 냄새들은 내 코를 심하게 자극하여 벌름거리게 만든다.

멈춰 선 도너츠 가게에서 500원짜리 핫도그를 주문한다.

설탕을 잔뜩 묻히고 그 위에 시뻘건 케찹통이 왔다 갔다 그림을 그린다.

세 번 입을 벌렸다가 닫으면 사라지지만 그 특유의 튀긴 맛을 그냥 지나치는 건 적어도 나한테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나 더 먹을까 생각을 하다가 포기한다.


‘옷 입어봐야 하는데 배 나오면 되겠나? 참자!’

입에 묻은 케첩을 휴지로 닦으며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간다.

여기저기 둘러 보고 또다시 멈춰 선 그곳은 옷 가게


‘명동의류’ 앞이다.

서울이 아닌데도 서울 느낌이 나고 왠지 세련된 옷이 있을 것 같은 동네에서 제일 큰 옷 가게.

물론 동대문에서 가져다가 파는 거 같았지만

이름은 왠지 내가 진짜 서울 명동에서 쇼핑을 하는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쇼윈도에 진열된 옷을 보면 신상이 나왔는지 어떤 스타일의 옷이 유행인지도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건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

178센티 65킬로에 허리 28.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피지컬이지만 그때는 옷 입어보는 재미가 좋았다.

넓은 매장에 들어서니 여지 저기서 손님들이 대화를 나누며 옷을 구경하고 있었다.

거의 다 여성 손님들이었고 나처럼 남자 혼자 온 사람은 없었다.

난 청바지가 전시된 곳으로 향했고 이거저거 만져보며 맘에 드는 3벌 정도를 손에 들었다.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거울 보고 번갈아 가며 입어보고 있는데

사장 아주머니께서 못마땅한 듯 말을 걸었다.


-학생 이제 그만 입어봐~

-네?

-그만 입어 보라고~ 옷 다 늘어나겠네~

-아니 사장님! 입어 봐야 옷을 살 것 아닙니까? 맞는지 안 맞는지 어찌 알고 사요?

-적당히 입어 보라 이거지. 누가 입어 보지 말래?

-아 네네~


아무래도 딱 달라붙는 스판 소재의 청바지다 보니 늘어나는 게 싫으셨나 보다.

이해는 하지만 입어 보고 맘에 들어야 사는 걸 어쩌라고요.

처음 오는 손님도 아니고 야박하게 그러시니 살짝 기분이 상했다.


마침내 결정한 계산대에 올려진 청바지.

-얼마예요?

-25000원.

-다 받으시게요? 좀 깎아 주시지~


가뜩이나 이거저거 입어본 것도 꼴불견인데 가격 흥정까지 하니 아주머니 얼굴이 별로였다.

아무 말씀이 없으시자 내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2벌 살게요 그럼 4만 원에 주세요~ 시장에서 누가 가격표대로 다 줍니까? 사장님!

안 그렇습니까? 좀 깎아 주세요~ 입어 본 걸로 가져갈게요 사장님~~~

-45000원!

-44000원으로 해 주세요~


난 만 원짜리 5장을 건넸고

‘사장님’을 강조한 내 흥정이 먹였는지 6천 원을 거슬러 받았다.


-감사합니다.


기쁜 인사를 하고 근처 뼈해장국집으로 발을 재촉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인 뼈해장국을 먹기 위해 난 흥정을 한 것이다.

유난히 더욱 맛있는 해장국을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했다.

흥정 뒤에 해장국의 맛은 그야말로 꿀이었다.

남겨진 깨끗한 뼈들과 빈 그릇들이 다음에 또 들러달라고 손짓을 했다.

5000원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서며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까지 상쾌했다.


‘명동의류’라고 적혀 있는 종이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음날 알바를 마치고 퇴근길에 승훈이가 내 청바지를 보더니 예쁘다며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명동의류의 위치를 가르쳐 줬다.

며칠 뒤 승훈이는 나랑 똑같은 청바지를 입고 왔다.


-여~ 샀네~

-괜찮아 보여?

-와 진짜 잘 어울린다? 역시 키가 크고 다리가 기니까 간지가 장난 없네~ 25000원 주고 샀어?

-응

-잘 샀네! 정말 잘 어울린다. 개간지!!


내심 우쭐하며 만족하는 승훈이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근데 승훈아 난 말이야....

22000원에 샀어 !! 음하하’


그냥 웃어지는 입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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