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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 May 01. 2022

99.5라 쓰고 100이라 읽었다

체중이 100점 만점이라면 나는 늘 상위 1%

나는 2.6kg로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세상에 나왔는데 당시 의료 상황에서 자칫 몇 백 그램만 모자랐으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도 있는 작은 아이였다.

작게 태어나 크게 키우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나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초등학생 때, 이미 60kg대를 진입하였고, 고등학교 때에는 80kg까지 치고 올라갔다. 청소년기에 갑상선 항진증을 앓게 되어 빠른 심장 박동과 줄줄 흐르는 땀에 흠뻑 젖으면서도 잘 먹어준 덕분에 살이 빠진 게 아니라 오히려 10kg가 느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20대에는 줄곧 80~84kg를 유지했다. 누구보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지만 정작 누구와 어떻게 결혼할지 몰랐던 26살의 어느 날. 남편을 만났고, 1여 년의 교제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핏은 예쁘지 않지만 99사이즈에도 넉넉히 입을 수 있는 웨딩드레스가 있었고, 덕분에 결혼식도 잘 마칠 수 있었다.


남편은 여자가 뚱뚱한 것에 별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남편보다 이마 하나가 더 큰 얼굴에 덩치도 산만한 나를 늘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에도 다이어트를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동거동락하는 사이, 우리는 아둘 둘, 딸 둘을 얻었다.


첫 아이는 결혼 후 두 달만에 찾아왔지만 자궁에 안착하지 못해 임신 5주만에 소파수술로 떠나보냈다. 그 후에 바로 찾아온 생명. 임신 기간 내내 입덧 하나 없이, 피자 한 판을 거뜬히 먹고도 아쉬운 식성을 발휘했다. 그리고 출산 후, 나는 5kg의 몸무게와 부유방과 예쁜 딸을 얻었다.


첫 아이 때에는 남들처럼 수유도 해보고, 유축도 해봤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고,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둘째를 출산 후, 나는 또다시 5kg의 몸무게를 얻었고, 90kg가 되었다. 그리고 셋째 임신과 출산 후, 또다시 5Kg를 얻어 95Kg가 되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다둥맘이 많다. 기본 셋 이상 낳아 기르는 엄마들은 언제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결혼 전부터 날씬했던 사람들은 아이를 몇 명을 낳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까. 아니면 그들은 수유도 열심히 하고, 육아도 열심히 해서 얻은 자연스러운 감량일까. 왜 나만 이럴까. 실망이 되기도 했지만 이젠 될대로 되라는 마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95kg로 유지될 거 같았던 몸무게는 넷째의 임신과 출산으로 100kg가 되었다. 임신 막달에는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몰라 1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자궁문의 상태를 보기 위해 내진을 하는데 임신 초기 때보다 10kg 이상 불어나 105kg를 바라보는 육중한 몸으로 산모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하필 겨울이라 롱패딩을 입고, 배가 볼록 튀어나온 상태로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나를 보는 사람마다 흑곰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넷째를 낳고 마지막 출산이니 이번만큼은 기적같은 몸무게 변화를 기대했으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몸무게는 100kg에서 멈추었다. 조금 많이 먹는 날에는 101kg. 조금 운동한 날에는 99kg 사이를 오고 갔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전문병원에서 인바디 검사를 한 날의 최종 몸무게는 99.5kg이었다.


나와 상담을 진행한 매니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는다.

"99.5kg이시네요? 그러면 100이라고 생각하고 딱 35kg만 감량해봅시다."


35kg면 둘째 아이 한 명을 내 몸에서 빼낸다는 뜻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반쪽이 되어 나타나는 연예인들 대다수가 몇 십 kg를 빼고, 요요없이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저게 가능한 숫자야?'라는 의심을 했었다. 말이 되는가. 1kg만 빠져도 '우와~'를 외치던 나다. 그만큼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박약으로 남편의 사랑에 숨어 현실도피하며 살아온 세월이 무려 39년이다. 내 나이를 어림도는 kg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감량해볼 수 있다면?! 나는 다시는 100으로 돌아가지 않을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지 않을까. 99.5라 쓰고 100이라 읽은 내 몸무게. 2022년 3월 31일의 몸무게는 그렇게 인바디 데이터로 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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