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Y Jun 27. 2022

하루를 마무리하며

2022.1.20

어제는 여러 사람들과의 미묘한 갈등으로 마음이 상해 있었다. 이런 기분이 오늘 아침까지 계속 되었다. 강단 말씀을 통해 문제, 갈등, 위기가 오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감정이 상하는 일은 쉽게 잘 안 풀린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집근처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에스더를 등원시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하나님, 갈등은 그릇을 넓히라고 주시는 건데 왜 이렇게 안 풀릴까요?'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발견된 건 갈등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들은 내가 갈등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이다. 내 기준으로 바라본 사람들에 대한 실망, 불편한 감정들이 쌓일수록 다치는 건 나 자신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정도로는 237 나라 5000 종족 살리기 부족하니 그릇을 키우시는구나. 전도자의 삶을 살며 평안하지만 때때로 사소한 일에 발목 잡히는 나는 참 연약한 사람이구나. 사탄은 내 안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께만 굴복하는구나. 이런 부분이 발견되어 감사했다.
저녁에는 다니엘과 함께 유치부 서밋예배에 참석했다. 지난 주일에 태영아예배를 드리고 포럼하다가 내가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잊고 있었다는 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다니엘이 사각지대가 되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주 강단 말씀을 통해 237 전도를 하려면 현장에서 치유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셨는데 결국 나부터 치유가 되게 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어 감사하다.
가정 현장은 직장 현장보다 더 치열하다. 네 아이가 잘 놀다가도 싸우고, 울고, 보채고, 짜증내고. 감정을 숨기는 거 없이 모두 발산하기 때문에 마찰도 갈등도 심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가정에서 예배가 잘 안 된다. 퇴근하고 오면 진짜 전쟁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다니엘의 수준보다 높은 기준을 들이대며 왜 못 하냐고 혼을 내기도 하고,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하지 않는 큰 애들을 보며 기다려주지도 못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할 만큼 교회에서의 모습과 직장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른 엄마라니, 애써 무시해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단을 통해 가정에서 예배가 회복되도록 미션을 주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가셨다. 이번주에 월요일에는 다니엘과 함께 유치부 정시예배를 드렸고, 오늘은 유치부 서밋예배도 함께 했다.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을 쏙 빼놓았지만 곁에서 말씀을 듣는 거 자체가 감사다. 예배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이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기적과 같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나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치유될 것이다. 지난 수요예배 때, 렘넌트는 기성세대와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엘리사는 조수아가 초등생이 되니 바로 서밋타임을 함께 했는데 에스더도 초등학생이 된다니까 서밋 타임에 합류시켜 미션을 하라고 얘기한다. 예배 드리고 언약, 미션, 비전도 찾고 매일 미션 수행하는 걸 보면 기특하다.
하루를 돌아보니 사탄에게 속은 시간도 많았고, 나 중심, 물질 중심, 성공 중심으로 만남, 사건을 해석한 시간도 많았다. 그러나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 주신 응답을 세어보니 그 은혜가 더 크고 많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 지나간 일에 주눅 들지 않는다. 매 순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나는 보좌의 축복 누리기 때문이다. 나는 왕처럼 당당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는 남은 자, 순례자, 정복자이다. 오늘도 주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사도행전 11장의 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