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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 Mar 14. 2024

마흔, 비로소 나를 마주하다

1984년 2월생.

나와 함께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혼란은 '빠른 생일'이었다. 나보다 항상 1년 앞서 가는 친구들. 그들이 가장 부러웠던 때는 20대이다. 성인식을 치르고 가장 아름다운 20대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또한 막연한 환상을 가졌었다. 나도 20살이 되면, 나도 21살이 되면 저렇게 예뻐질까? 그러나 그때의 바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뚱뚱했고, 지금도 뚱뚱하기 때문이다.


빠른 생일이어서 친구들보다 우쭐 되었던 건 30대 후반이었다. 38살이 되면서부터 확연히 달라지는 몸 상태를 느끼며 한방 다이어트에 도전했고,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쓴 덕은 톡톡히 보았다. 10개월 만에 18kg을 감량했다. 18년 만에 이뤄진 꿈이었다. 그러나 요요로 8kg가 느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 빨리 마흔이 된 친구들은 유독 자주 아팠고, 눈가의 주름도 더 깊어졌다. 체형은 2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친구지만 그녀의 복근은 온데간데없었다. 잘 웃는 친구라 웃음 복근이었는데 아들 셋 낳는 동안 사라져 버린 친구의 복근을 보며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들이 마흔이 되는 모습을 보며 빠른 생일이라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러나 내가 마흔이 되고 보니 38살 때보다, 39살 때보다 유독 더 자주 아프고 기운도 없다. 게다가 조금만 먹어도 순환이 되지 않았다. 아침마다 일어나 확인하는 건 18kg 감량으로 얻어낸 결혼반지와 약지 사이의 공간 체크다. 해외 생활 중에 스트레스로 살이 급격히 빠졌을 때 맞췄던 반지라 요요 현상으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온 뒤엔 끼고 싶어도 낄 수 없던 반지였다. 그러나 한방 다이어트 효과로 반지를 끼울 수 있게 되었다. 요요가 와서 8kg 정도 다시 찐 상태라 반지가 맞지 않게 될까 봐 늘 노심초사다. 그런데 아침이면 몸이 부어 있으니 반지를 돌려가며 오늘은 얼마나 부종이 심해졌는가를 체크하는 것이다. 사실 먹어도 붓고, 먹으면 붓는 상태라 반지로 다이어트 승패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초초해졌었다. 순환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서 아름다워질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건강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나이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삶을 바꿔야만 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요양원과 공장 위탁 급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그래서 종종 요양원으로 배달을 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런 노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일반화되어가고 있다지만 공장 단지에 뜬금없이 세워진 요양원,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한 건물의 한 층에 있는 요양원 같은 데에서 내 노후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양원 현관을 나서도 보이는 풍경이라곤 잿빛 건물들 뿐이라니. 게다가 몸이 아파서 현관조차 나설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하지? 빠른 생일의 특헤로 1년 먼저 마흔을 맞이하는 친구들을 보며 의기양양할 때가 아니라 10년, 20년 뒤에 벌어질지 모를 나의 미래를 미리 보며 삶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마흔이 된 나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왜 지난 40년간 나는 고도비만으로 살아야만 했는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다양한 저가의 다이어트 보조제가 아닌 값 비싼 한방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도 그들이 목표했던 감량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폭식의 길로 접어들었는가. 왜 요요가 오는데도 막지 않고 일부러 더 야식을 찾아 먹었는가. 여러 가지 자책과 후회를 해보지만 알 수 없던 이유를 이제야 찾게 된다.


대충 살았구나. 대충 먹고, 대충 자고, 대충 놀았구나. 안타깝게도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구나. 배가 고파 먹는 게 아니라 나를 괴롭히기 위해 먹었구나. 자야 할 때에 할 일 없이 웨이브나 뒤적거리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내 몸을 상하게 했었구나. 왜 이렇게 대충 살았을까. 대충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40살이 된 내 모습이라면 나는 남은 인생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시작한다. 내 안에 자리한 Big Bug를 없애는 도전.

대충(大蟲子)

대충대충 말고. 진짜 큰 벌레 같은 악 습관.

나를 살 찌우고 아프게 한 나쁜 악습관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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