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2월생.
나와 함께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혼란은 '빠른 생일'이었다. 나보다 항상 1년 앞서 가는 친구들. 그들이 가장 부러웠던 때는 20대이다. 성인식을 치르고 가장 아름다운 20대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또한 막연한 환상을 가졌었다. 나도 20살이 되면, 나도 21살이 되면 저렇게 예뻐질까? 그러나 그때의 바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뚱뚱했고, 지금도 뚱뚱하기 때문이다.
빠른 생일이어서 친구들보다 우쭐 되었던 건 30대 후반이었다. 38살이 되면서부터 확연히 달라지는 몸 상태를 느끼며 한방 다이어트에 도전했고,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쓴 덕은 톡톡히 보았다. 10개월 만에 18kg을 감량했다. 18년 만에 이뤄진 꿈이었다. 그러나 요요로 8kg가 느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 빨리 마흔이 된 친구들은 유독 자주 아팠고, 눈가의 주름도 더 깊어졌다. 체형은 2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친구지만 그녀의 복근은 온데간데없었다. 잘 웃는 친구라 웃음 복근이었는데 아들 셋 낳는 동안 사라져 버린 친구의 복근을 보며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들이 마흔이 되는 모습을 보며 빠른 생일이라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러나 내가 마흔이 되고 보니 38살 때보다, 39살 때보다 유독 더 자주 아프고 기운도 없다. 게다가 조금만 먹어도 순환이 되지 않았다. 아침마다 일어나 확인하는 건 18kg 감량으로 얻어낸 결혼반지와 약지 사이의 공간 체크다. 해외 생활 중에 스트레스로 살이 급격히 빠졌을 때 맞췄던 반지라 요요 현상으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온 뒤엔 끼고 싶어도 낄 수 없던 반지였다. 그러나 한방 다이어트 효과로 반지를 끼울 수 있게 되었다. 요요가 와서 8kg 정도 다시 찐 상태라 반지가 맞지 않게 될까 봐 늘 노심초사다. 그런데 아침이면 몸이 부어 있으니 반지를 돌려가며 오늘은 얼마나 부종이 심해졌는가를 체크하는 것이다. 사실 안 먹어도 붓고, 먹으면 더 붓는 상태라 반지로 다이어트 승패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초초해졌었다. 순환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서 아름다워질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건강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나이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고 삶을 바꿔야만 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요양원과 공장 위탁 급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그래서 종종 요양원으로 배달을 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런 노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일반화되어가고 있다지만 공장 단지에 뜬금없이 세워진 요양원,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한 건물의 한 층에 있는 요양원 같은 데에서 내 노후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양원 현관을 나서도 보이는 풍경이라곤 잿빛 건물들 뿐이라니. 게다가 몸이 아파서 현관조차 나설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어떻게 하지? 빠른 생일의 특헤로 1년 먼저 마흔을 맞이하는 친구들을 보며 의기양양할 때가 아니라 10년, 20년 뒤에 벌어질지 모를 나의 미래를 미리 보며 내 삶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마흔이 된 나를 조금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왜 지난 40년간 나는 고도비만으로 살아야만 했는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다양한 저가의 다이어트 보조제가 아닌 값 비싼 한방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도 그들이 목표했던 감량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폭식의 길로 접어들었는가. 왜 요요가 오는데도 막지 않고 일부러 더 야식을 찾아 먹었는가. 여러 가지 자책과 후회를 해보지만 알 수 없던 이유를 이제야 찾게 된다.
대충 살았구나. 대충 먹고, 대충 자고, 대충 놀았구나. 안타깝게도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구나. 배가 고파 먹는 게 아니라 나를 괴롭히기 위해 먹었구나. 자야 할 때에 할 일 없이 웨이브나 뒤적거리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내 몸을 상하게 했었구나. 왜 이렇게 대충 살았을까. 대충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40살이 된 내 모습이라면 나는 남은 인생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시작한다. 내 안에 자리한 Big Bug를 없애는 도전.
대충(大蟲子)
대충대충 말고. 진짜 큰 벌레 같은 악 습관.
나를 살 찌우고 아프게 한 나쁜 악습관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