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맘루크왕조시대(A.D. 1250-1517)
1. 맘루크왕조의 이슬람 계승
(1) 맘루크의 기원
맘루크(Mamluk)는 아랍어로 “소유된 자(노예)”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들은 9세기 아바스왕조시대에 칼리프들이 중앙아시아 및 코카서스 지역의 전쟁포로들을 노예군인으로 양성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맘루크는 가문이나 부족중심의 기존 군대와 달리, 칼리프 직속의 친위부대로서 고도의 전문군사훈련을 받은 군대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바스왕조의 국력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맘루크는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칼리프의 폐위와 옹립을 결정하는 등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후 아바스제국이 분열되자, 맘루크는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세력의 핵심적 군사조직으로 재편되었으며, 특히 이집트에서 맘루크는 강력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2) 아이유브왕조의 군사권 장악
12세기 살라딘(Saladin)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수립한 아이유브왕조(Ayyubid Dynasty, A.D. 1171-1260)는 십자군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맘루크를 직속 친위군단으로 편성하여 운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유브왕조의 말기에 이르러 맘루크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맘루크가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권력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A.D. 1250년에 십자군전쟁의 혼란 속에서 아이유브왕조의 술탄들의 사망이 잇따르자, 맘루크는 아이유브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의 카이로를 수도로 하는 맘루크왕조를 수립하였습니다. 이는 노예군인이 국가경영의 주체로 전환된 사례이며, 이후 맘루크왕조는 267년간 이슬람문명권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3) 아인 잘루트 전투
A.D. 1258년에 아바스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가 함락된 후, 훌라구의 몽골기병대는 멈추지 않고 이집트를 향해 서진하였습니다. 그러나 A.D. 1260년, 맘루크는 아인 잘루트 전투(Battle of Ain Jalut)에서 몽골군을 격파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이슬람문명이 완전히 사라질 뻔한 위기에서 맘루크왕조가 이슬람문명의 방파제 역할을 해낸 역사적 대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아인 잘루트 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맘루크왕조는 이슬람문명을 수호하는 실질적인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였습니다. 또한, 이후에 맘루크왕조는 강성한 일칸국과 십자군 잔당을 동시에 제압함으로써, 중동지역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4) 이슬람문명의 오스만제국으로의 전승
맘루크왕조의 술탄들은 바그다드에서 탈출한 아바스왕조의 후예를 카이로로 데려와서, 칼리프로 옹립하며 이슬람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습니다. 비록 당시에 칼리프는 실권이 없었으나, 이슬람의 상징적 존재로서 카이로에 상주한다는 사실은 이슬람문명권의 정신적 지주가 건재함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로써 맘루크왕조의 카이로는 학문과 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A.D. 1517년에 맘루크왕조가 오스만제국에 정복될 당시, 그들이 운용하던 토지제도, 조세행정, 그리고 성지관리규범은 오스만제국의 통치체제 속으로 고스란히 통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맘루크왕조는 이슬람의 통치방법과 학문적 성과를 보존하여, 오스만제국으로 전달하는 역사적 가교역할을 완수하였습니다.
2. 일칸국의 이슬람화(A.D. 1256-1335)
훌라구의 일칸국은 아바스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의 칼리프 모스크(Jami al-Khalifa)를 파괴하였으나, 이후 인류사적으로 보기 드문 역설적인 반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무력으로 이슬람문명을 굴복시켰던 몽골인들이 오히려 피정복민의 이슬람문명에 점차 동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제7대 칸인 가잔 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일칸국은 이슬람문명의 파괴자에서 이를 계승하는 수호자로 변모하였습니다.
부연하면, 일칸국의 칸들은 바그다드를 비롯한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하고 천문대와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슬람의 깊은 학문적 자산이 몽골 특유의 개방성과 결합하면서, 서아시아의 이슬람문명은 멸망의 위기를 딛고 더욱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이는 이슬람문명이 지닌 강력한 동화력과 자생력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3. 티무르제국의 이슬람화(A.D. 1370-1507)
14세기 말에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티무르제국은 몽골의 바를라스부족 출신인 티무르가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재건을 정치적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티무르는 스스로를 “이슬람의 전사”로 명명하는 동시에 몽골의 강력한 기마군사력을 계승하여,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하는 거대한 티무르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티무르는 점령지의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 장인들을 사마르칸트로 강제이주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르칸트는 당대 최고의 지식과 기술이 응축된 지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찬란한 도시로 변모하였습니다.
티무르제국의 학문적 성취와 예술적 감각은 훗날 아나톨리아의 오스만제국으로 이어지는 이슬람문명의 중요한 가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천문학, 수학, 건축학 분야에서 일궈낸 학문적 성과들은 이슬람문명이 공백기 없이 다음 세대인 오스만제국으로 바통을 넘길 수 있게 한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습니다.
4. 이슬람문명의 계승과 전승한 맘루크왕조시대
아바스왕조의 바그다드 함락부터 259년간 이어진 맘루크왕조시대는 아랍인이 이룩한 찬란한 이슬람문명이 멸절될 수도 있었던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을 넘어 확장을 이룩한 시기였습니다. 요약하면, 아랍인이 사라진 자리를 맘루크왕조가 메워 이슬람의 정통성을 지키고, 일칸국이 이슬람문화를 재건하며, 티무르제국이 이를 정교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슬람문명은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1,400년의 유구한 이슬람문명사에서, 아바스왕조와 오스만제국을 잇는 이 중간기는 아랍인이 이룩한 찬란한 이슬람문명이 저물 수도 있는 가장 어두운 밤이었으나, 동시에 이민족들이 새로운 주역이 되어 가장 찬란한 아침을 준비한 응축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맘루크왕조시대에 이슬람문명의 계승과 전승의 역사는 훗날 오스만제국에서 활짝 꽃피게 될 이슬람문명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이룬 소중한 원류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주) 징기스칸의 사후, 몽골제국이 분열되고, 새로 창업된 순서로 본 몽골계 국가
1. 주치칸국(A.D. 1227-1502):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의 가문이 동유럽/러시아 초원에 정착하며 가장 먼저 국가체제를 갖췄습니다.
2. 차가타이칸국(A.D. 1227-1347): 징기스칸의 차남 차가타이가 중앙아시아 일대를 물려받으며 창업하였습니다.
3. 일칸국(A.D. 1256-1335): 징기스칸의 손자 훌라구가 서남아시아를 정복하며 일구었습니다.
4. 원나라(A.D. 1271-1368): 쿠빌라이 칸이 국호를 원으로 정하며 동아시아의 정통 제국으로 선포했습니다.
5. 모굴리스탄칸국(A.D. 1347-1680): 차가타이칸국이 분열될 때 몽골의 전통을 지키려던 동쪽 세력이 세운 국가입니다.
6. 티무르제국(A.D. 1370-1507):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서차가타이 지역을 통합하며 등장하였습니다.
7. 무굴제국(A.D. 1526-1857):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가 인도로 내려가 세운 몽골계의 마지막 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