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오스만제국시대(A.D. 1299-1922)
1.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대제국의 서막
(1) 기상천외한 전략과 중세의 종말
오스만제국(Osman Empire)의 제7대 술탄인 21세의 젊은 정복자 메흐메트 2세(Mehmed II)는 A.D. 1453년에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 A.D. 330-1453)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는 골든혼(Golden Horn: 금각만)만의 입구에 쳐져 있는 쇠사슬을 피하기 위해서, 야밤에 함대를 산 위로 끌어올려서, 이를 골든혼(Golden Horn: 금각)만의 안으로 다시 띄우는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철옹성 같았던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역사적 대사건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이 무너진 것과 같은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비잔틴제국의 종말과 함께 천년의 중세시대(Middle Ages)는 막을 내렸고, 이슬람은 명실상부한 세계사의 중심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2) 이스탄불의 탄생과 로마의 계승
메흐메트 2세는 정복한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Istanbul)로 개칭하고, 에디르네에 있던 오스만제국의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였습니다. 메흐메트 2세는 파괴자가 아닌 건설자로서 이스탄불을 재건했으며, 이슬람의 규범과 동로마의 통치제도를 융합하여 중앙집권적 이슬람제국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메흐메트 2세는 스스로를 카이사르(Kayser-i Rûm)라 칭하며, 오스만제국이 로마제국의 정당한 계승자임을 만천하에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오스만제국이 지중해연안 문명권의 새로운 주인임을 공표한 것이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3대륙을 아우르는 통합제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구축하였음을 의미합니다.
2. 지식의 보존과 술탄-칼리프 체제의 확립
(1) 인류지성의 수호자와 르네상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 전후로 이탈리아 등지로 망명한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이 가져온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들은 서구 르네상스를 꽃피운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헌들은 사실 아바스왕조시대부터 이슬람학자들이 정교하게 주석을 달고 보존하며 발전시켜온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부연하면, 서구 사회가 중세 1,000년 동안 학문적 암흑기에 빠져 있을 때, 이슬람은 고전지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준 위대한 수호자였습니다. 만약 이슬람이 보존한 고전지식의 복원이 없었다면, 서구의 르네상스(Renaissance) 역시 그 동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2) 술탄-칼리프 체제확립
오스만제국의 제9대 술탄인 셀림 1세(Selim I)는 A.D. 1517년에 맘루크왕조를 정복하며, 이슬람사의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하였습니다. 즉, 셀림 1세는 성지 메카와 메디나의 관리권을 인수함으로써, 맘루크왕조가 형식적으로 보호해오던 칼리프의 권위를 술탄의 권력으로 일원화하였습니다.
이로써 정치적 실권자인 술탄이 종교적 수장인 칼리프를 겸임하는 “술탄-칼리프”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이는 이슬람의 역사에서 정교분리되어 있던 권력이 하나로 통합된 사건으로서, 오스만제국은 전 세계 무슬림문명권의 영적·정치적 구심점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3. 수레이만대제와 팍스 오토마나
(1) 법률체계와 밀레트제도
제10대 술탄 수레이만대제(Suleiman the Magnificent)시대의 오스만제국은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는 카누니(입법자)라는 별칭답게 이슬람법과 관습법을 집대성한 법전(Kanun-name)을 편찬하여, 오스만제국을 다스리는 법률체계를 완성하였습니다.
특히 수레이만대제가 피정복민에게 종교적 자유를 인정한 “밀레트제도(Millet System)”와 능력위주의 인재등용을 한 포용정책은 다민족·다종교 사회를 갈등 없이 유지한 비결이었습니다. 이러한 수레이만대제의 포용정책은 오스만제국이 6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하겠습니다.
(2) 이슬람예술과 건축의 미학적 정점
당대 최고의 천재 건축가 시난(Sinan)에 의해 완성된 장엄한 모스크들과 세밀화, 화려한 공예기술은 이슬람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즉,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과 맞닿은 장엄한 모스크의 돔과 첨탑(Minaret)은 오스만제국의 위엄을 시각적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영토의 확장을 넘어, 이슬람이 가장 성숙하고 풍요로운 문명공동체로서 만개했다는 증표입니다. 또한, 오스만제국은 16세기 전성기에 이르러 학문, 예술, 제도 등 모든 면에서 인류문명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오스만제국이 구가한 번영과 평화의 시대를 일컬어 팍스 오토마나(Pax Ottomana)라고 합니다.
(3) 예루살렘성벽의 재건
수레이만대제는 십자군전쟁 이후 파괴된 채 방치되었던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즉, 이 성벽은 그 중심에 위치한 이슬람성지인 바위돔(Dome of the Rock)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가로 1km와 세로 1km의 정사각형(약 1km²)으로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Old City)를 감싸고 있습니다.
4. 지중해 패권의 장악과 대항해시대의 개막
(1) 동서무역로의 독점과 경제적 패권
오스만제국은 실크로드의 요충지를 장악하여, 육상을 통한 동서 교역상품의 흐름을 통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유럽의 상업도시들은 동방의 비단과 향신료 등을 구하기 위해서, 오스만제국에 막대한 통행세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스만제국은 지중해항로를 장악하여 사실상 지중해를 “오스만제국의 내해”로 만들었으며, 이로써 오스만제국은 육상에 이어 해상의 교역로까지 모두 장악하는 경제적 패권국으로 군림하였습니다. 이러한 오스만제국의 강력한 경제적 장벽은 유럽의 경제를 압박하며, 결국 그들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2) 유럽을 대서양으로 밀어낸 오스만제국
오스만제국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유럽인들은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이라는 미지의 바다로 눈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즉, A.D. 1492년 이탈리아의 제노바공화국 출신으로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신대륙(아메리카대륙) 발견과 A.D. 1498년 포르투갈왕국의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이룩한 인도항로개척은 오스만제국의 지중해독점이 낳은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즉, 근대 대항해시대(신항로개척시대)의 개막은 서구의 자발적 개척이라기보다, 오스만제국이라는 거대한 힘이 유럽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밀어낸 역설적인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오스만제국은 의도치 않게 세계의 지평을 넓힌 근대화의 촉매제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하겠습니다.
5. 오스만제국의 쇠퇴와 이슬람문명의 이양
(1) 오스만제국의 쇠퇴원인과 비극적인 종말
19세기 산업혁명과 민족주의의 열풍 속에서, 오스만제국은 “유럽의 병자”라 불리는 수모를 겪으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즉, 오스만제국은 내부적 부패와 외부적 압력 속에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쳤으나, 결국 시대의 거친 파고를 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스만제국은 결정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탈리아)의 편에 서는 선택을 함으로써 대제국의 와해를 자초하였습니다. 그 결과 600년을 이어온 오스만제국의 광활한 영토는 승전국인 연합국(영국·프랑스·미국)에 의해 갈갈이 분할되는 비극을 맞이하며, 장엄한 역사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2) 현대로 흐르는 이슬람문명
A.D. 1922년 술탄제폐지와 함께 오스만제국은 해체되었으나, 오스만제국이 응축했던 문화적 정체성과 제도적 유산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인위적인 국경선 획정이 오늘날 중동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통치철학이었던 관용과 통합의 이슬람문명은 소중한 유산으로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스만제국시대는 1,400년의 찬란한 이슬람문명을 현대라는 새 시대에 이양한 거대한 가교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꽃피었던 이슬람문명의 위대한 유산은 오늘날 이슬람문명권의 탄탄한 근간이 되어, 시대를 관통하는 도도한 물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주 1) 중세시대(Middle Ages)는 일반적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A.D.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A.D. 1453년까지의 약 1,000년의 기간으로서, 오로지 기독교와 봉건제라는 두 축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주 2)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혹은 부활을 의미하며, 13세기 말부터 15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중세의 신 중심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Humanism)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 거대한 문예부흥운동입니다.
주 3) 제1차 세계대전(A.D. 1914-1918)은 사라예보사건(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피살)으로 발발되어,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오스만제국의 동맹국과 영국·프랑스·미국의 연합국이 전 세계적으로 격돌한 대전입니다.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종교와 인종을 무시하고 자를 대어 반듯반듯하게 그어버린 국경선은 중동을 갈갈이 찢어놓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