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구원해 준 동심의 멜로디
우리나라 고3의 공부 행군이 얼마나 힘겨운지는 전 국민이 다 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씁쓸한 어느 날, 고3이었던 나는 살 떨리는 디데이 카운트를 하며 동네 이마트를 향했다. 독서실에 가져갈 커피를 잔뜩 살 요량이었다. 1층 식품매장만 들러서 사도 될 것을, 굳이 2층 서점 코너도 슬쩍 한번 가 본다.
새로 나온 모의고사 문제집을 살펴보다가, 바로 옆 실내놀이터에서 꼬맹이들이 까르르 자지러지게 웃고 떠들며 노니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산 깊은 사찰의 풍경소리처럼 아스라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이다지도 맑고 기분 좋은 소리였다니!
순수한 이들이 마음껏 내어 지르는
동심의 멜로디는
철창 속에 갇힌 내 영혼을 구원해주는 듯했다.
매서운 수능시험을 치른 시린 겨울이 가고, 입시 결과가 나왔다. 내 수능 성적은 수학, 과학탐구, 영어는 만점이지만, 사회탐구와 언어영역은 다소 아쉬웠다. 당시 2004년은 뜨거운 교대 붐이 일었던 해다. 여자에게는 안정적인 직업이 좋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참 많이들 했다. 나는 부산에 있는 교육대학과 대구에 있는 의과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두 군데 다 합격 통보를 받았다.
수능 끝난 직후 엄마와 철학관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점을 봐주신 분이 내 사주에는 칼이 없다고 한 말씀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핑계가 점점 더해졌다. 집에서 먼 지방의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솔직한 마음은 6년은 기본, 10년까지 피 말리는 공부와 피를 보는 수술 수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무서웠고, 잘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이제는 살벌한 공부 전쟁에서 좀 해방되고 싶기도 했다.
마음을 비우니, 지난여름 이마트 실내놀이터에서의 감흥이 밀려왔다. 그때 들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머리가 가벼워지고, 가슴이 간질거렸다. 나는 집에서 불과 3킬로미터 거리인 부산교대에 갈 것을 결심했다.
교대 생활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내가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학교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롭게 걸어갔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들러 철학서를 깊이 탐독했다. 십 대 때는 이과 관련 책들만 잔뜩 보았던 나는, 철학과 인문학에 늦바람이 든 것처럼 흠뻑 빠져들며 균형을 맞춰갔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도 집에서 악보를 잔뜩 챙겨서 교대 별관인 음악관까지 걸어갔다. 음악관 1층에는 혼자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개인 연습실이 열 실 가량 있었다. 햇살이 잘 드는 조용한 방에 들어가 캐논 변주곡부터 쳤다.
암보가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다가,
가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쨍쨍한 노란색 봄 햇살이 흠뻑 밀려왔다.
음악관 마당 정원에는 장미꽃이 가득했고, 나비가 유유히 팔랑거릴 뿐 사람의 기척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화사하고 고요한 시간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니! 내가 대학생이라는 현실이 참으로 기뻤다.
이따금 우리 학교 바로 옆 아파트가 본가인 중학교 친구 서진이가 나를 찾아왔다. 당시 본과생이던 친구는 많이 야위고 지쳐 보였다. 밥을 먹으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내가 부럽다고 재차 얘기하는 친구에게, 나는 왠지 많이 미안했다. 친구가 고생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지만, 한편으로 나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