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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침잠mania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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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주 Jul 13. 2022

외모천재 모델 트레이닝

미(美)의 덧없음에 대한 소회

걷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학교에 갈 때도 과외를 갈 때도 놀러 갈 때도 항상 걸었다. 부산 서면이나 연산 로터리를 지날 때, 에이전시 매니저라는 분들께 명함을 몇 번 건네받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무심결에 그냥 흘렸는데, 앞으로 초등학생들을 가르칠 내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건 아이들 진로지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졌다. 우연히 다가온 세 번째 제안은 참 감사했다.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내게 명함을 준 매니저 언니를 따라 모델학원이란 곳을 다니게 되었다. 당시 나는 22살로 키는 170 정도였는데, 학원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고 키는 제일 작았다. 다른 애들은 대부분 17~19살 정도의 고등학생이었고, 키는 평균 180이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예쁜 여자애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놀라움은 금세 압박감으로 변했다. 


나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키를 늘려야 했다.      


기초 자세 트레이닝 시간에 그 힘든 벽타기를 악착같이 하고, 집에 와서는 다이어트 서적을 탐독하며 세상에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외웠다. 무더위에도 과외를 하러 왕복 세 시간 거리를 걸었고, 하루에 허락된 음식이라곤 아오리사과 8개가 전부였다. 몸은 하루하루 말라가며 46킬로그램이 되었고, 어깨뼈가 더욱 앙상하게 드러났다. 집에서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아빠는 너무 놀라 당장 모델학원을 그만두라고 다그치셨다. 





밥을 안 먹겠다고 고집부리며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는 딸을 보며 부모님 마음은 타들어만 갔다. 그렇게 힘들게 체중을 감량하고 벽타기를 했는데, 키는 두 달간 겨우 1센티미터만 자랐다. 스무 살이 넘어서 키가 컸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만, 나는 속상했다. 


거울방에서 워킹 연습을 할 때 가장 속상했다. 


내 양옆으로 여자 동생들이 섰다. 그들의 어깨에 내 이마가 닿았다. 동생들은 정확히 얼굴 하나만큼 나보다 더 컸다. 그 모습을 사방에서 보며 연습하는 시간은 정말 괴로웠다. 매니저 언니는 내가 충분히 개성 있고 좋다고 살을 그만 빼라 했지만,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외모에서 오는 열등감을 난생처음 뼈저리게 느꼈다.     



마음이 많이 쭈그러들었지만, 이왕 시작한 것이므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학원을 마치고 모델 동생들과 근처 카페에 갔다. 나 혼자 대학생이고 과외로 용돈을 벌었기에, 빙수랑 커피 등을 샀다. 더운데 땀까지 함빡 쏟은 몸에 달고 시원한 게 들어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피지컬이 뛰어나서 내심 부러웠던 현진이가 내게 물었다.


“언니, 언니는 이미 평생 직업이 정해져서 너무 좋겠어요.”

“아니야, 꼭 그렇지도 않아. 나름의 고충이 있지. 현진이는 꿈이 뭐니?”


나의 질문에 동생은 아이스티를 한 모금 쭉 들이켜더니,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저는 중동 항공사에 취직해서, 중동 부자의 첩으로 살고 싶어요.”



순간 댕 하고 머릿속을 종으로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웠지만 그 자리에서는 절대 티를 낼 수 없었다. 자리를 파하고 집에 돌아왔다. 


속절없는 환멸감이 밀려왔다. 


물론 화자는 나름의 이유와 입장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더는 깊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동안 노력했던 벽타기와 워킹연습, 다이어트에 신물이 났다. 3개월이면 경험으론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학원을 그만뒀다. 


한동안 미(美)의 덧없음에 허망해하며 염세주의자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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