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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침잠mania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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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주 Jul 13. 2022

초임교사의 꿈동산 메이킹

‘자중자애(自重自愛)’와 ‘교학상장(敎學相長)’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특수목적대학교인 교대에서 학과 성적은 여전히 중요했다. 우리는 예비교사였지만, 임용고시를 반드시 통과해야 정교사로서 교단에 설 수 있었다. 4년간의 학부 성적은 임용시험 점수와 합산해서 총점으로 반영되기에, 내신도 잘 관리해야 했다. 나는 학기별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는 모든 것을 끊고 시험에 몰입했다. 1학년 첫 중간고사 때 과탑을 한 이후로, 말 못 할 부담과 책임감이 그렇게 만들었다. 


5월에 열리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라, 10월에 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도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라 참가하지 못했다. 기간이 겹치지만 않았더라면 하는 야속함이 대학 생활 내내 사무쳤다. 한 번쯤 눈 질끈 감고 도전하거나, 휴학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진로에서 조금이라도 우회하거나 늦기는 싫었다. 한눈팔지 않고 최대한 충실하게 임한 결과, 교대 학사과정 내신 1등급으로 2월 졸업 후 3월에 바로 발령을 받았다.     




나의 초임교는
창작동요제 대상 수상 곡인 ‘노을’이 탄생한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였다. 


발령일 당일, 새벽 세 시쯤 나는 정장을 차려입고 아버지 차에 올라탔다. 옷가지와 책, 노트북 등 짐꾸러미를 대강 챙겨 싣고 부모님과 함께 나의 첫 직장으로 출발했다. 홀로서기를 할 새집에 도착하니, 이미 8시경이었다. 나는 곧장 학교로 향했다. 부모님 배웅을 받으며 첫 출근을 하는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고,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집에 계시면서, 하루 종일 침대며 책상, 세탁기, 텔레비전 등 살림을 장만하고 집을 정돈하셨다. 경황없이 교무실에 도착해 교감, 교장 선생님께 차례로 인사를 드리자마자, 아침 애국 조회가 시작되었고 모두들 운동장으로 나갔다. 전교생 친구들이 운동장에 줄을 선 모습을 보니 심장은 더욱 터질 것 같았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 끝나고, 새로 부임한 선생님 소개를 할 순서였다. 새하얘진 머리에서 쥐어짠 인사말을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내 목소리가 동네방네 울려 퍼졌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도 들으셨다고 했다. 다 큰 딸의 뒷바라지를 하러 이 먼 곳까지 오셔서 고생하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 슬하를 떠나 독립하는 딸이 얼마나 걱정되고 애달프실지 나는 짐작하고 또 짐작했다. 그날 저녁 엄마 아빠가 부산 본가로 다시 내려가시자마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 홀로 남은 집에 꽉 채워진 세간들을 보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또 느꼈다. 



엄마는 내게 퇴근 후 집에 오면 텔레비전을 그냥 틀어놓으라고 하셨다. 딸이 외롭고 무서울까 봐 티브이 소리로라도 적막을 깨 주고 싶은 마음이셨던 게다.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도록 나는 더욱더 씩씩하게 생활했고, 학교에서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은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나의 첫 학교 운동장은 굉장히 넓었다. 전체 10학급의 농촌 시골 학교였지만, 승진점수가 있는 경합지역이었기에 쟁쟁한 선생님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막내인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신규교사 취임식 날에는 교장 선생님 포함 선배 선생님들이 직접 오케스트라 연주를 해주셨고, 이대 성악과를 나온 특수학급 찬미 선생님은 아리아로 축하 무대를 채워주셨다. 이날 취임식에 참석하러, 아버지가 부산에서 한 번 더 올라오셨고, 행사가 끝나자 교감 선생님께서 아버지를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렸다. 


낯선 타지에 발령받아 홀로 사회인으로 살아내야 하는 내게, 직장 분들은 기꺼이 가족의 빈자리에 들어와 주셨다. 그때 나는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이런 성대한 취임식이 기본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은 건 내 연차가 쌓여 후배들의 입직을 지켜보면서였다. 그때 이후 나는 지금껏 이 정도의 신규취임식은 보지 못했다. 새내기 교사인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받아주신 그분들은 내 인생의 은인이셨다.     




* 교직 첫 해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한 배움시간 *



교직 첫해 내가 맡은 분장은 4학년 담임과 6개의 업무였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학창 시절이 4학년이었기에, 이건 운명이라 생각됐다. 

우리 반 학생들은 나를 바다처럼 품어줬다. 


초임 교사의 혈기와 패기를 학급 운영 전반에 담았고, 아이들은 호기로이 응답하며 따라왔다. 당시 내가 정했던, 우리 반 교수학습 약속 구호는 무려 13종에 달했다. 아이들은 유치하다는 볼멘소리도 하나 없이 그 모든 걸 익혀서 나와 함께 소통해주었다. 


멜로디를 얹은 메시지귀엽고 깜찍한 손 제스처를 더한 구호 만들기에 내 모든 창의력을 갈아 넣었다. 귀여운 우리 친구들이 이 깜찍한 구호를 활기차게 외치면 얼마나 더 빛날까를 미친 듯이 고민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합의 케미를 발하면 우리 반의 연대가 얼마나 더 고양될지를 생각하니 몹시 흥분되었다. 


돌이켜보면 굳이 이런 걸 치열하게 고민했던 나의 발상이 가장 귀여웠으리라. 우리가 함께 우렁차게 외치는 교학상장 구호는 이후 5년 동안 계속되었다. 신규교사 첫해 4학년 이후 이듬해부터 4년간은 연속 6학년 담임이었다. 13종 구호가 막을 내린 건 1학년을 맡고 나서였다. 유치원에 다니다 갓 입학한 1학년 병아리들은 복잡다단한 13종을 소화할 수 없었다. 이후로는 짧고 간결한 3가지 구호만 살아남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때가 더 잘 보인다. 시간이 쌓은 경험의 힘으로 기억은 객관화된다. 사춘기 고학년 학생들의 오글거림을 무마한 건 순전히 담임에 대한 지지였으리라. 이토록 귀한 마음을 내어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참 많이 감사했다. 


그리고 나 역시
순수함으로 빚은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우리 학급 반가 동영상을 만드느라 밤새기 일쑤였고, 학급 환경 미화를 위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꾸몄다. 대학생 때 배워둔 피오피 실력으로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다 페인팅 붓으로 써서, 작품란과 파일철 표지를 만들었다. 


앞뒤 게시판 타이틀뿐 아니라 배경에 붙이는 꽃송이들도 직접 만들었다. 종이를 오리고 말아서 꽃잎을 구현하고, 작은 스티로폼 공을 쪼개서 색을 입혀 꽃망울을 만들었다. 거기다 반짝이 실을 오린 암술 수술을 글루건으로 붙이면 완성되는데, 한 송이에 대략 7분이 걸렸다. 이걸 수십 개 만들고 나면 이미 밖은 어두웠고, 내 손은 딱풀과 본드가 묻어서 굳은 시커먼 때 범벅이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저녁까지 이 짓을 하고 또 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 고생을 사서 했다. 컬러 프린트 및 플로터도 다 있는 학교에서, 나는 자체 가내수공업 공장을 풀가동했다. 나의 갸륵한 정성이 아이들에게 학습 동기가 되어주길 바라며, 공을 들여 탑을 쌓고 또 쌓았다. 그리고 매해 3월마다 몸살을 앓았다.    

 



*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우리들의 '꿈배움동산'을 화사하게 채워나갔다 *



나의 교육 꿈동산은 아마존처럼 날로 무성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싱그럽게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 어떤 나무보다 파릇파릇 눈이 부셨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중자애(自重自愛)’와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쉽게 풀어서 자주 얘기해줬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호흡하다 보니 나름의 교육관도 정립되었다. 내가 생각한 교육의 목표는 아름답고 존엄한 ‘사람 꽃’을 피우는 거였다. 이를 위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하는 정성스러운 활동과 시간이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 우리교실의 주인공은 학생 한 명 한 명, 우리반 친구들 '모두'입니다 *



모든 꽃은 저마다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내 영혼의 열망과 육신의 열정을 쏟아부은 이 꿈동산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모두 각자의 고유한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이 숲의 주인공인 나의 학생이 꽃을 만개하는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나는 그들이 비빌 땅이자 거름이 되어주고자 부단히도 애썼다. 신록으로 무성해지는 꿈동산에서 나의 청춘도 그렇게 흘러 지나갔다. 



* 사랑하는 우리반 여학생 친구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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