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으로 건져 올린 나의 성장기
삶은 때로 깊은 호수와도 같다. 표면은 잔잔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쉼 없이 파동이 일어난다. 나는 그 물속으로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살아왔다. 때로는 숨이 막히고, 때로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그곳에서만 들려오는 고요의 목소리가 있었다. 「침잠mania」는 바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온 나의 기록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언니라는 커다란 그늘 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홀로 마주한 수치스러운 사건은 내 안에 깊은 금을 냈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을 시끄럽게 흘려보지 않고, 차라리 잠잠히 가라앉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마당의 금붕어에게 파리를 잡아 던져주며 생명의 비밀을 깨달았고, 충직한 진돗개 재롱이는 충성이라는 가치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작은 생명들의 울림이 나를 사색의 길로 이끌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늘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활약했다. 친구들은 나를 ‘17방미인’이라 불렀다. 뭐든 잘한다는 칭찬은 박수 소리 같았지만, 그 박수 뒤에 남는 적막은 무거웠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린 나를 조여왔고, 나는 자꾸만 깊은 물속으로 도망쳤다. 상을 받던 날조차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화려한 무대 조명 뒤의 그림자처럼, 나는 늘 두 개의 얼굴을 품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 나는 비로소 불완전한 나를 껴안는 법을 배워갔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나의 이름은 ‘전교 1등’으로 바뀌었다. 입학식 단상 위에서 선서를 하던 순간, 나의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이 내려앉았다. 새벽마다 농구공을 던지듯 자유투를 연습했고, 시험 전날에는 코피를 쏟아내며 끝까지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3년간 ‘1등’이라는 껍질을 지켜냈지만, 그 속은 늘 외로움으로 차 있었다. 사춘기의 감정은 연습장 구석에 흩어진 지우개 가루처럼 쓸쓸히 흩어졌고, 나를 위로한 건 언제나 침잠의 고요뿐이었다.
과학영재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무너졌다. 전국에서 모인 천재들의 틈에서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밤마다 이불 속에서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 좌절은 나를 한 뼘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열등감은 비로소 겸손으로 변했고, 경쟁은 공존의 지혜로 다가왔다. 텅 빈 수레가 요란하듯, 진짜로 가득 찬 수레는 묵직하게 침묵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수능이 끝난 후, 내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였다. 의대와 교대. 세상은 의대를 더 빛나는 길이라 했지만, 내 마음은 아이들의 웃음에 붙들렸다. 의사가 아닌 교사의 길을 택한 순간, 나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숨이 트였다. 교대에서 철학과 문학, 사색과 예술 속에 몸을 담그며 나는 다시 균형을 찾았다. 그리고 초임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섰을 때, 확신했다. 교육은 지식이 아니라 존엄한 ‘사람 꽃’을 피워내는 일이라는 것을.
교직의 세월은 나에게 또 다른 이름들을 선물했다. ‘미코샘’, ‘행사의 여왕’ 같은 별명은 웃음을 주었지만, 내 안의 목마름을 채우지는 못했다. 매너리즘을 두려워한 나는 스스로 무대와 도전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장학사의 길로 나아가 더 넓은 교육의 지평을 바라보게 되었다.
돌아보면 내 삶은 언제나 경쟁의 굴레 속에 있었다. 성적의 경쟁, 입시의 경쟁, 교직과 업무의 경쟁. 그러나 그 치열한 장면마다 나는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본질을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인간을 구원하는 건 경쟁이 아니라 존엄이라는 것을. 침잠은 나를 보게 했고, 존엄은 나를 지켜주었다.
「침잠mania」는 내 삶의 부침 속에서 건져 올린 사색의 기록이다. 나는 침잠을 통해 성장했고, 존엄을 통해 세상과 마주했다.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하고 다가오지만, 나는 여전히 침잠 속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고 있다. 그 희망은 나를 다시 내일로 이끄는 가장 단단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