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과학꿈나무들을 싣고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씩 들어본 노래가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막연히 선망했던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찾아왔다. 중2 봄날, 학교 선생님께서 나와 몇몇 친구들을 다급하게 불렀다. 과학영재교육원 입학 지원서를 주시며, 한번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영재교육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내용에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주말에 응시 시험을 보러 대학교로 갔다.
1998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영재교육 진흥법에 따라 국가 과학영재의 조기 발굴과 체계적 육성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대, 경남대 등 전국 다섯 권역의 국립대가 국가 공인 영재교육기관으로 지정되었고, 미래 창조적 과학자를 육성한다는 일념으로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원을 설립하여 입학생을 모집하였다.
처음 가 본 대학교는 위용이 대단했다. 더구나 어른들 인솔 없이 친구들끼리 이렇게 먼 곳에 시험을 보러 왔다는 자체가 무척 설레고 근사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고사실에서 필기와 면접시험을 보았다. 오전 필기시험이 끝나고 면접실에 들어가니, 여러 교수님이 앉아 계셨다. 그중 가운데 있던 심사위원이 내가 쓴 탐구 답안지를 내려다보더니, 의아해하며 대뜸 입을 열었다.
“서체를 봤을 땐, 남학생인 줄 알았구먼.”
옆의 교수님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내 글씨는 크고 힘찼으며, 가로획은 일관되게 살짝 우상향으로 솟았다. 교수님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고, 나는 특유의 차분함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마지막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오래 고민을 해본 경험이 있나요?”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동안 풀었던 수많은 수학 문제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오랜 기간 답답했던 물음표가 명쾌하게 느낌표가 되던 순간이 기억났다.
지난해 나를 삼일이나 고민에 빠뜨렸던 함수 문제 해결 스토리를 말씀드렸다. 면접 평가까지 마치고 시험장을 나오는 발바닥에는 날개가 달렸다. 진솔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비록 15살이지만, 친구들과 대학교 정문을 의기양양 빠져나올 때는 마치 대학생이 된 듯한 달콤한 착각에 잠시 취했다.
캠퍼스를 벗어나자, 오 남매의 막둥이였던 한 친구가 우리들의 손을 잡아끌고 작은 식당에 데려갔다. 냄비에 온갖 재료를 넣고 테이블에서 보글보글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를 난생처음 접한 나는 무척 흥분되었다. 압권은 마지막에 할머니 사장님이 직접 만들어주시는 볶음밥이었다. 불판에서 주걱으로 현란하게 밥을 비비다가 마지막에 김 가루를 한가득 팍팍 뿌려 내어 주시는데, 마치 내가 진짜 대학생이 된 듯했다. 이렇게 멋진 경험을 해보다니! 집에 돌아와서도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시험이 어땠냐는 부모님의 질문도 뒤로하고, 즉석 떡볶이를 박살 낸 나의 무용담을 목이 아프도록 자랑스레 떠들어 댔다. ‘어른의 맛’을 본 이날은 중학생이 된 이래로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한 달 뒤, 저녁에 학원에서 돌아오니 우리 집 전화통에 불이 났다. 뉴스에서 나를 보았다는 친척들과 부모님 지인들의 전화였다. 동네 사람들도 나를 마주치면 뉴스에서 보았다고 반갑게 말해주었다. 그해 여름, 나는 대학 부설 과학영재교육센터 중등부 제1기 신입생으로 최종 선발되었고,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내 모습이 관련 뉴스 보도에 잠깐 나왔던 것이었다. 정작 나는 그 방송분을 보지 못했지만, 내가 공중파 텔레비전에 나온 첫 경험이었다. 시험에 응시하러 같이 간 친구들은 모두 떨어지고 나만 혼자 합격해서 미안했으나, 나는 과학꿈나무로서 첫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