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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ul 18. 2022

[주간단남] 7월 2주 차 아침 생각

22.07.10(일) - 22.07.16(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7.12 (화)


(..)

특정 사건이 지나간 뒤에 그것은 나의 기억 속에서만 생생히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 실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기억하는 어떤 순간을 통해 계속해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어쩌면 인간이기에 누리는 상위적인 능력이 아니라 동물로서 생존에 유리한 능력을 개발시켜온 덕에 도달하게 된 지극히 기초 수준의 능력인지도 모른다. 천적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두 번째로 천적을 만났을 때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지를 제대로 간파해 낼 능력이 채 생기기도 전에 사회가 워낙 급변하고 다변화한 탓에 개인의 욕구마저도 과거 '동물'시절에 '유일한' 목표였던 생존이라는 것을 넘어선 단계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체의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에도 무언가를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여기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기준이 수립될 확률이 높다. 


생존이라는 유일한 키워드를 공유할 때에는 의견 차이나 오해의 가능성이 적었다. 무엇이 생존에 유리한 전략인지는 시행착오가 있을진 몰라도 일단 확실한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확실한 위협과 그것에 맞서기 위한 확실한 전략이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현대판 위협'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어서 그것의 타당성과 우열의 경계가 모호할뿐더러 그 경계를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상황이 이런 탓에 두 세계가 충돌한다면 상호 이해의 태도를 갖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투쟁·도피의 반응이 일게 마련이고, 상대가 내게 잠재적 위협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곧장 투쟁 반응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현재 무슨 '사단'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어야 짐승 수준의 인간이 아닌, 인간다운 인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일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여전히 짐승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듯하다. 하하.


우리가 해롭다 믿고, 기계적인 투쟁 반응을 보이는 대상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어떠한 주관적인 관념에 위배되는 사건일 뿐이다. 우리 자신은 그것이 대단히 합당하고 이성적이며 심지어 도덕적이라고까지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전혀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유치한 '생떼'에 가깝다는 것이다.


투쟁 반응은 감정이고, 따라서 그것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다. 순수하게 이성에만 바탕을 둔 합리적 기준이었다면, 구태여 감정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으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에 가깝겠지만, TV 속 이름 모를 누군가의 희생 소식보다 지인의 희생 소식에 더 격한 울분과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인간이 그런 논리적인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

의식적인 노력이 없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인 판단과 결정만을 내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무엇인가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모종의 감정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알아차리고 또 자신이 '바보짓'을 하게 될 것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곧장 빠져나오기란 그렇기에 실로 어려운 일이고 숱한 시행착오와 부단한 수행이 필요한 하나의 경지라고 해야겠다.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갈등의 현장에 함께 놓여있을 상대의 영혼을 깨우고 드높이는 작용을 하기에 한편으로는 이타적 행위로 볼 수도 있다. 


(..)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한다면, 설령 그 도움을 받는 당사자는 그 효험에 대해 깨닫지 못할 만큼 영혼의 레벨이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타적 행위다. 그러나 이를 머리로만 알고 몸으로 깨우치지 못한 나란 인간은 이번에도 이기적인 존재로 남게 되는 선택을 반복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본능적인 판단에 휘말리지 않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각자만의 세상이 존재함을 상기하는 것. 동시에 각자만의 세계가 서로 겹쳐지며 살아가는 공존의 영역 역시 분명히 존재하기에 공통적인 룰의 존재에 가까운 기준 또한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자신의 기준이 언제나 주관적 기준일 뿐 하나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 체계나 가치체계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이 과연 공존의 영역에도 적용될만한 기준인지를 스스로가 끊임없이 점검해 나가야 한다. 그런 공공의 영역의 존재에 대한 상정이 없이는 개별적 존재들은 끝없는 자기주장의 굴레에서 평생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말 것이다.


썩을 것인가, 그것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인간다움을, 영혼의 고양을 이뤄낼 것인가? 이것은 결코 질문이 아니다.




22.07.13 (수)


(..)

진작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슬슬 내 공부를 정과 부로 그 중요도를 확실히 구분 지을 필요가 있겠다. 내 본업은? 현재 나의 본업은 '글 쓰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위해? 나로 인해 누군가 삶에 용기를 얻고 위안을 받고 나아가 살아갈 방향성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실제로 나는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잊지 말자. 직업은 자격증이나 수입이 생기는 순간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직업은 자신의 지향점이, 비전이 생기고 그것을 가슴속에 품은 채 첫 발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정의되는 것이라는 것을. 수입이나 명성 등은 그로 인한 부차적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22.07.14 (목)


(..)

융의 동시성은 그가 이미 존재하는 자연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그의 견해를 덧붙여 만든 개념이지, 동시성이 가리키는 그 현상을 융이 창조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융 이전에도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해 나갈 것이다.

(..)

타로든 역학이든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다루는, 자연의 법칙을 관찰하고 읽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적어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주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끝없는 수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몸 공부, 마음공부. 그리고 공부에 당연히 뒤따라야 할 실천까지. 그것들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롱런할 수 없다. 돈 벌기에만 혈안이 되어 중요한 것을, 초심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부단히 갈고닦자.




22.07.16 (토)


(..)

나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이렇게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부모님을 만난 것일까.

(..)

침뜸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책을 거의 열어보지 않게 되네. 신경 써서 자주 펼쳐볼 수 있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나의 몸에 임상을 계속해보는 것이다. 어딘가 이렇게 불편한 곳이 있다면 진단을 하고 4관과 함께 관련 혈자리를 눌러가며 가장 통증이 심한 곳을 다스리는 연습을 해보자. 저녁 명상 시간을 침 치료의 시간으로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

(..)

에고가 커질 대로 커진 우리 현대인들은 반드시 크게 대가를 치를 때가 올 것이다. 그런 계기를 겪고 난 이후에야 인간은 비로소 각성을 하고 겸손한 마음,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보다 지혜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자만과 실추를 기반으로 한 성장 교실 커리큘럼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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