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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ug 01. 2022

[주간단남] 7월 4주 차 아침 생각

3주차는 몸이 아파서 쉬었습니다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7.26 (화)


(..)

재앙은 마치 물처럼 가장 낮은 층부터 스며든다.

(..)

고작 일주일 안 썼다고 모닝페이지 쓰기가 이렇게 힘들어지냐ㅎ




22.07.27 (수)


(..)

서서히 모든 것들이 원래의 궤도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 모든 문명이 파괴가 되더라도 인간은 다시 천천히 지금의 상태를 재건할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별 종들이 특출나서라기보다는 집단 무의식의 힘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묻는다. 피아노를 쳤을 때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배우기 시작했었는지. 나는 음악이 주는, 음악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 감동. 그것의 매력에 빠졌었다.

(..)

이상하다. 집중력이 특별히 삐꾸(?)난 것 같진 않은데 뭔가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

그래도 오늘은 여차여차 3쪽까지 도달은 하겠네. 그래, 그렇게 다시 차츰차츰 늘려나가자. 이런 식으로 라면 주간단남에 적을 말들을 건져낼 것은 없겠지만 그런 것일랑 신경 쓰지 말자. 이제 10분여 남았다. 무슨 말을 더 쓸까. 저 시간도 사실 신경 쓰지 않아야 온전한 리듬의 몰입이 가능할 텐데.

(..)

세상을 쥐락펴락하고자 하니 곧바로 고통이 뒤따르는 게 느껴진다.

(..)

이번 일은 내게 많은 걸 시사한다. 군자의 삶을 살면 형을 피해 간다는 말. 평소에 몸과 마음가짐을 두루 바르게 하고 몸에 좋은 생각과 식습관을 두루 겸비하라는 것. 어찌하여 그 단순한 진리를 잊고 바쁘다는 핑계로 제일 먼저 그러한 일상의 리듬을 이루는 루틴이라는 벽돌을 내려놓아 버리는 것으로 타협해버린 것이냐.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 그것은 얼마나 내려놓음 없이 묵묵하게 지켜왔느냐에 따라 그 진가가 발휘되는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내가 제거해야 할 것은 그런 진귀한 보석과도 같은 일상의 루틴들이 아니라 나를 좀먹는 생각이요, 온라인에 주의를 계속해서 붙잡아 두는 각종 플랫폼들이다.




22.07.28 (목)


(..)

이 펜이 다 떨어지면 나는 무엇을 써야 할까. 이걸 추가로 주문하라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도 자꾸 까먹거나, 보더라도 자꾸 뒤로 미루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세상에 아무 원인 없는 무엇인가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리필액이 없이 몸뚱아리 전체를 통째로 계속 주문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펜이 너무 마음에는 들지만 평생의 파트너로까지 동행해야 하나 하는 물음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을 내리지 못하겠는 것이다.

(..)

서술부와 교훈부(?)를 명확히 구별지어 독자로 하여금 어떤 메시지를 꼭 가져가게끔 하고 싶어 하는 억척스러운 글만을 위주로 써오던 내가 본 이슬아 작가의 글은 세련됨 그 자체였다. 메시지는 있지만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 보이지 않고, 벌어지는 해프닝의 행간 속에 교묘히 함축시켜 놓은 글. 그렇게 될 때 사건은 무미건조한 행동들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이어지는 행동과 대화 사이에 촉촉하고 습윤한 무엇이 있다. 어떤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을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사건이 아닌, 특별한 그 무엇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다. 그렇게 사건을, 아니 상황만을 서술하는 것에 그쳤을 뿐인데도 그것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된다. 음미하면서 행간 속에 녹여 낸 그 케미컬을 맛봐야 하는 그런 시 말이다.

(..)

나는 문학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은 없다. 그보다는 칼럼니스트 정도가 더 나의 바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아!'하고 희망을,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순수하게 글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글에서 부릴 수 있는 기교만으로 사람을 홀릴 만큼 그렇게 대단한 문장력을 지닌 사람은 아니다. 그나마 스스로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다상량인데, 그마저도 요즘 생각하고 기록하기를 게을리했더니 녹이 슬어가는 게 느껴진다. 

(..)

앞으로 글쓰기는 계속해서 더 중요해질 것이다. 물론 공식에 맞춰서 쓰는 그런 판에 박힌 글쓰기는 인공지능이 훨씬 잘할 것이다. 글쓰기가 중요한, 그리고 앞으로도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것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

아침에 환기를 시키는데 문득 나 스스로가 자원만 축내는, 비효율적인 존재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와 실체가 있는 자원을 소모하며 사는데, 그에 준하는 다른 유/무형의 자원을 혹은 상품을 만들어내며 살고 있는가? 물론 자원의 소비와 결과물의 산출이 즉각적으로, 마치 물물교환이나 쇼핑처럼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때때로 그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은 아닌가 하는 상념에서 쉬이 벗어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

사실 우리 모두는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온 것이지, 상품이나 자원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노동 자원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4차 산업 혁명이 도래하여 인간이 설자리를 잃는 게 아니라, 지금 서 있는 그곳이 인간의 설자리가 아니었음을 100년이 넘는 세월 끝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조금이나마 자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4차 산업 혁명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 낸 효과이리라. 

무엇이든 깨지고 부서지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변모하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일자리를 잃었다고 좌절하는 개인들은 매 산업 혁명 시기 때마다 존재해왔다. 그럴 때마다 인류는 다른 업종을 탄생시키며 새롭게 길을 모색해 나갔다. 이번 혁명은 일자리 자체를 없앤다면, 인류는 어떤 방향을 찾게 될 것인가?

스스로가 자원이 되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경제적 관점에서만 뭔가를 창출해 내는 그런 단 하나만의 길 혹은 굴레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 전 인류가 서서히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

문제는 그래서 지금 당장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아직 그런 시대는 완전히 도래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돈 돈 거리고 돈 때문에 사람도 죽인다. 돈 때문에 전쟁도 일어나고 있는 마당에 내가 말한 인류의 각성은 머나먼 얘기처럼 들릴 뿐이다.

다방면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자. 필요하다면 노동도 하고 또 나만의 가치를 연마하는 일과 동시에 그것을 활용해 볼 생각을 해보자. 그러면 방구석에서 연마만 하는, 즉 이론만 혼자 덩그러니 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앎과 실천이 하나의 통로가 되어 에너지의 순환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런 심장 뛰는 삶이 펼쳐질 것이니.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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