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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ug 08. 2022

[주간단남] 8월 1주 차 아침 생각

7/31(일) - 8/6(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8.01 (월)


(..)

그래서 더 붙잡고 싶고 벌써 오늘이 월요일이란 사실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머리로는 안다. 새로운 하루는 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이란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고, 그 하루는 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며, 그것은 다시 새로운 달의 시작을 알린다.


(..)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누릴 수 있었음에 충분히 감사하며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빈자리가 생겨줘야만 또다시 무엇인가가 그 자리를 채우러 들어와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이겠다.


(..)

인간은 아픔을 통해,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그것은 비단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는 듯한 극렬한 고통의 모습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자잘한 모습으로 겪는 고통도 존재한다. 남들이 잠들어 있을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는 것, 꿈만 같던 달콤한 순간들을 뒤로 한 채 다시 일상 모드로 전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생활 속에서의 절제와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며 그때그때 다가온 순간을 맞이하는 현존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또한 고통의 감내를 통한 성장의 길에 다름 아니다. 


(..)

배우는 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한, 인간은 타락하지 않고 실패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란 세간이 말하는 그런 물질적/사회적 관점에서의 일정 수준 이상을 달성해 내지 못했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앞서 말한 감각과 영혼의 각성, 어찌 보면 우리가 삶이라는 체험을 하고 있는 근본적 목적에의 달성에 대한 실패를 말한다.


(..)

나는 모른다는 마인드를 언제나 기저에 장착한 채 무엇이든 배우려 하고, 어떤 경험을 하든 그 속에서 더 성장하는 사람, 배움에 있어서 경험에 있어서 편식하려 하지 않은 채 삶이 준비한 최적의 커리큘럼, 최고의 코스 요리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만이 삶이 존재하고 우리가 각자가 존재하는 이유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실패할 수가 없다.




22.08.02 (화)


(..)

내 정신 좀 봐라. 고새 쓰잘데기 없는 부차적인 것에 정신이 팔려 본질을 놓치는구나. 글의 핵심은 내용에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더 던져줄지, 일상에 크든 작든 파문을 일으킬지 만을 생각하자. 그게 나의 임무이고 소명이다.


(..)

'답정너식' 질문은 질문의 형태만 띠고 있을 뿐, 심지어는 수사적 질문과는 달리 듣는 이의 참여, 즉 대답을 유도하기까지 하지만 답이 정해진 질문이기에 답변자가 애써 생각한 보람이 없게 만들 확률이 매우 높다. 그것이 '답정너식' 질문이 되지 않으려면 질문자가 개방된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수능을 출제했다가도 오류가 발견되면 정정 조치를 취하고 사과를 하듯, '답정너식'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로 상대가 깊게 생각을 하고 던진 대답이 자신이 '미리 마련해둔' 정답과 불일치할 때, 그것의 타당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모른다는 생각을 베이스에 깔아두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

자신의 관점을 견지함과 동시에 다른 이의 의견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 입장에 결코 발을 깊게 담가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 자체가 진흙과 같이 무르고 정돈되지 않아 발을 디디면 그 발을 깊이 삼켜버리는 늪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선 안 된다. 생각은 잘 정리되고 안정되어 두 발을 단단히 지탱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림이 없는 동시에 잘못된 관점임을 알았을 때 두 발을 신속히 옮기기도 용이하다.


(..)

몸이 무언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감각의 충분한 일깨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들이는 시간의 양보다는 질에 더 비례하는 게 맞겠지만, 그 시간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어느 정도의 양이 요구되는 법이다. 누구나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 발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발전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충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투자하여 꾸준히 축적시키는 과정을 밟기 마련이다.


(..)

비워내야 할 것이 있다면 기존의 지식이나 습관, 그리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온갖 부정적이고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생각들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는 것과 새로운 것을 채우는 작업은 동시에 이루어지며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낸다. 할 수 있다고 믿을수록 연습의 질이 는다. 질이 는다는 것은 동일한 시간을 투자해도 더 많은 양의 축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또한 연습이 쌓이면 자신감도 한결 더 생기게 된다. 몸이 먼저냐 마음이 먼저냐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은 언제나 하나이기에 따로 떼어놓고 무언가를 가정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짓이기 때문이다.




22.08.04 (목)


(..)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상대를 걱정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배고파서 상대에게 배고프진 않은지 챙기는 식의, 걱정하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그런 자기 충족의 욕구에서 비롯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사려 깊다, 섬세하다, 배려심이 많다는 평을 듣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드러난 행위 자체보다도 그 행위 속에 담긴 진짜 의도다. 행위의 본질적 목표 자체가 상대가 아닌 나 자신뿐이라면 그것은 상대는 자기 욕구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2.08.05 (금)


(..)

단 한 명이라도 나를 통해 도움을 받는다면 나는 계속해서 내가 세상에 환원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글을 비롯한 여러 수단을 활용하여 세상에 내어놓을 의향이 있다. 그것은 내가 100만 지기 땅을 가지고 있든 작은 텃밭 하나 가지고 있든 같은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최적화 작업보다도 행위의 본질에, 즉 나의 경우 세상에 크든 작든 선하고 의로운 영향력을 끼치는 것, 집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렇기에 모름지기 자기만의 길을 걸어나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잊을만하면 하는 정도의 빈도라도 좋으니, 부단히 자기 자신과 대화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행위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일인지, 그 자체로 얼마나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지 등을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깨어남으로 가는 길이다. 영혼이 잠들지 않도록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슴에 품었던 그것을 다시금 꺼내 보는 것. 그것이 영혼을 고양시키고 각성시키는 길이다.


(..)

매미가 새벽부터 열심히 운다. 매미에겐 미라클 모닝 같은 개념은 없겠지. 일어나기 싫은데 그것을 이겨내며 이른 아침에 일어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그것이 요맘때 매미들의, 혹은 시기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계절감에 따라 자동적으로 나오는 생(生)의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그런 자연의 일상적인 광경에 우린 의미나 가치를 부여한다. 가령 부지런함이나 근면 성실함 같은 가치를 말이다. 자연은 그저 존재할 뿐인데 인간은 자신만의 해석의 틀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도출해낸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는 말의 핵심인 것은 아닐까.


문자 그대로 모든 행위의 시작은 내면에서 이는 어떤 생각의 스파크에 의해 불이 붙어 일어난다. 그런 스파크는 자연이나 일상 같은 혹은 특별한 사건 같은 모든 경험의 한순간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경험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각자만의 의미를 산출해 내는 일종의 프리즘을 통해서 말이다. 


뮤즈는 외부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내적 영감은 우리 각자의 안에서 꽃 핀다. 영감의 씨앗이 먼저 생겨나고 극에 필요한 경험을 우리가 끌어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마치 어미의 뱃속에서 생명력이 요동치는 작은 씨앗과 같은 '태아'가 생겨나면 그 자신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어미를 통해 특정 음식이 당기게 만들어 얻어내는 것과 유사하다.


(..)

비 내리는 날에 되려 출근을 더 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인간이 정해둔 문명의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연의 변모에 발맞춰 그 리듬에 따르는 삶을 살라는 뜻일 것이다. 


동물들도 비가 내릴 땐 하루 쉬어간다. 식물도 겨울에는 시들며 다음 봄을 기약한다. 오직 인간만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들이 정해둔 크로노스의 시간에 맞춰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간다. 롤 모델이 로봇이나 기계라도 되는 것일까. 자연이 무슨 배경음악이라도 되는 듯 병풍마냥 깔아만 두고 여유가 있을 때나 한 번씩 눈길을 주는, 자신들이 소유한 공공재라도 되는 듯 대하는 것이 우리가 지닌 자연관의 현주소다.


(..)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고 궤적을 그려나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떻게든 어떤 수준이든 그들과 관계를 맺고 또 이어나가며 교류의 폭을 넓혀 나가고 싶다. 그렇게 세상에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는 교류의 물결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 글쓰기와 더불어 꼭 배워두고 연습해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취재와 인터뷰 기술이 아닐까.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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