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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03. 2022

壬寅년 己酉월 네 번째 기록

22.09.25(일) - 22.10.01(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9.25 (일)



(..)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것을 앞으로 얼마나 모닝루틴으로 계속 가져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이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 뿐인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 내 명성이 높아진다면 그에 비례해서 가치는 더 널뛰기를 할 테다. 사후에 더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듯이 내가 죽고 났을 때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사람이 내가 써온 모닝페이지들을 발견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난중일기처럼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질 기록물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기록물 자체보다도 기록자의 행보나 명성에 더 많이 좌우될 것 같다.


(..)

한 개인의 위대함은 그가 자기 자신을 잊었을 때 드러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충무공은 전쟁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를 내려두었다. 나는 어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후에 유명해질지의 여부를 상상하고 있는 나는 나를 잊지 못한 사람이다. 죽음 이후에 현생에서의 부와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히려 살아 생전에도 그런 세속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일관되게 보일 때만이 후대인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

세상은 내게 필요한 것만을 준다. 내가 원하게 되는 건 세상이 나로 하여금 바라게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것은 고스란히 현실에 드러난다. 신의 계획과 나의 의도가 합일을 이룰 때 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된다.




22.09.26 (월)


(..)

꽤나 강력한 새 시작의 기운들이 오늘이라는 날에 응축되어 있다. 어제가 신사일(辛巳日)이었고 오늘은 임오일(壬午日)이다. 수승화강의 물상, 순리가 한 번 크게 뒤섞이는 물상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유명한 임오군란도 임오년에 일어났다. 비록 년운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뭔가가 새롭게 시작되기엔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 하루다.


(..)

내가 내 사주를 보면 40세가 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서 40대 때부터는 날개짓을 활짝 하게 될 팔자다. 그러니 꾸준함을 잃지 말고 정진하다 보면 반드시 나의 시기가 온다. 그 전에 내가 필요한 것들, 어차피 언젠간 할 것이라 생각하는 이슈들, 가령 결혼 같은 것을 정리해 두는 것이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른다.


(..)

늘 적막만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고독이 되지만, 이따금씩 찾아오는 적막은 평화와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흔히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착각은 새로운 경험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늘 같은 생각, 같은 행동,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같은 삶의 양상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미지와 취향이라는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영고불변의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늘 흐르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때론 그것이 자기 자신 자체라고 여긴다. 생각이나 취향이 곧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통에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그 부분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그것을 곧 나 자신이 부족한 것이라 여기거나 나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에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다.




22.09.27 (화)


(..)

시나브로로 꾸준히 하는 것. 수불석권의 힘을 상기시키자. 시간 없다고 미뤄버리지 말고 말야. 그리고 이제는 슬슬 통변 팁들을 모을 때가 되었다. 마치 다람쥐가 겨울철 식량을 미리 차곡차곡 쌓아두듯 모아둘 수 있도록 하자.


(..)

왜 나만 고생이야? 라는 피해의식은 느낄 필요가 없다.


(..)

내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공부에 쓰고 있는지를 상기시키라.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러지 않을 때에 드러나는 결과의 차이는 천지차이다.


(..)

모닝 페이지도 그와 비슷하다. 아무런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생각의 바다에 풍덩 빠져 자유롭게 유영하다 보면 이따금씩 손에 뭔가가 걸린다. 그것을 집어서 관찰해 보면 뭉툭한 돌덩이 일 때도, 빛나는 보석일 때도 있다. 이렇듯 생각의 바다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저마다의 모양과 규칙으로써 존재하고 있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또 가능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아서 마치 자각몽을 꾸듯 만물이 창조되어 드러날 수 있는 곳이 생각의 바다다.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으며 그 끝엔 무엇이 있는지 밝혀진 바가 없이 이런저런 추측과 소문만이 무성할 뿐이다.


(..)

만약 길을 걷다가 누군가 갑자기 쓰러진 것을 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분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특히 쓰러진 사람이 여성일 경우 더더욱 주위에 있는 여성 분에게 CPR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할 테다. 요즘 같은 세상은 선의만으로 모든 것이 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구덩이에서 꺼내줬더니 봇짐을 내놓으라는 옛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이것도 어쩌면 한민족의 못된 습성일 수도 있겠다. 도움 받은 것, 누리고 있는 것은 보지도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부족한 것에만 '언제나' 초점을 맞추는 것. 이런 습성은 매사를 불만 섞인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

사주에 재(財)가 많고 금기(金氣)가 부족한 내게 절제력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이를 명심하지 않으면 언젠간 한 번 크게 데이게 되리니. 어쩌면 현재 대운에 간여지동으로 편재운이 들어온 것이 내게 그런 훈련을 하라는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




22.09.28 (수)


(..)

나는 어젯밤 한 걸음 더 성장했다. 스스로와의 약속, 즉 침대 위에서는 잠만 잔다. 책 정도만 허용한다는 '특정 장소에서는 정해진 범위 내의 행동만 하기'를 떠올린 것이다. 굉장히 고무적이다. 물론 처음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당연히 기존 세력의 반발심이 일었다. '다음부터 해~'와 같은 타협의 목소리로써 나의 변화를 가로막는 기존의 습(習)들. 무의식 깊숙히 자리잡은 그것을 완전히 뒤바꾸거나 뿌리 뽑기 위해서는 꽤나 세심한 주의와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

나는 왜 주변을 둘러 보며 나의 위치를 확인 받고자 하려 하나. 무엇인가를 계속 신경쓰고 거기에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어떤 에너지를 쓴다는 것은 그것을 내가 중요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집단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대놓고 선호하지는 않지만, 일단 두각을 내고 난 이후에는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고, 놓지 않으려는 기질이 있다. 이는 일종의 소유욕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은근한 승부욕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주변을 더 신경쓰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서 기인할 것일 테다. 동물들만 봐도 자기 무리에서만 우두머리가 되려고 혈안이 되어있지, 자기 집단을 정복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 보다 더 강한 종에게 도전하고 싶어하는 강함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하지는 않는다. 인간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본능에 대해 얘기할 때만 맞는 얘기일 뿐,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능을 넘어설 줄 아는 존재다. 주변을 견제하기 보다는 늘 더 높은 곳을 올려다 보며 그쪽으로 노를 저어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역사는 '개척자'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

삶에서도 우선순위라는 게 매우 중요하다. 삶에는 '때'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라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보통 나이로 대표되는 생물학적 상태만을 결부지어 생각하지만 그것은 삶의 철학으로써 기능하기엔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명리학을 배우고 나서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다르게 들린다.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이라는 흐름의 존재를 상정한다. 따라서 살면서 노를 저어야 할 때와 쉬어갈 때를 아는 것,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수확할 지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 때를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철부지'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다만 이 때라는 것은 개개인별로 다르다. 생물학적 시기와 운의 흐름이 늘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두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100인100색인 것이 우리네 생의 얼굴이다.


(..)

그것의 시급성은 누가 만들었나?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인생은 내 안의 다양한 '나'와의 끝없는 대화의 연속이다. 이 중에 나는 어떤 '나'와 주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가? 이에 따라 나의 인생의 항로 역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을 어떡하겠나. 그렇다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발을 담근 분야의 가짓수를 무한대로 증식시키는 것도 아니다. 내 관심사와 에너지에도 총량와 지속시간이란 게 존재한다.


내가 특별히 애쓰지 않더라도 나와 인연이 아닌 것들은 알아서 정리가 될 것이며, 인연이라면 아무리 거부를 해도 결국엔 돌고 돌아 나를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가슴을 열고 나의 내면이 편안해지는 쪽을 택하라. 감정이야 말로 내 삶의 진정한 나침반이다. 언제나 내면을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그곳에 늘 해답이 존재하니 말이다.




22.09.29 (목)


(..)

주 4일제가 전면 시행 된다면 '불금'은 추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불목'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 어쩌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게 많은 변화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퇴근만 기다렸다가 고삐 풀린 짐승처럼 쏘다니는 밤 문화에도 큰 변동이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음주가무의 나라 대한민국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ㅎㅎ


(..)

몰기를 할 뻔 하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흥분과 긴장의 상태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이 갑작스레 찾아오겠다고 문을 두드렸는데 나는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넘어져 버려서 귀한 손님을 마주하지 못한 것이다. 똑같은 활과 화살에 날씨도, 주변 사람도, 모든 게 다 그대로였는데 내 마음 하나 달라진 것 만으로 그 토록 다른 경험이 펼쳐졌다.


(..)

명상은 정신적인 능력을 상당부분 발달시켜준다. 집중력, 평정심, 마음의 정화 등.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기반은 현실에서의 실용적인 부분에서도 곧바로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업무의 능률이 올라가고 대인관계가 좋아지며, 특히 나와 같이 영적 능력의 개방이 요긴하게 쓰이는 업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니 나와 마주하는 그 소중한 경험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 명상을 하기 귀찮아 하는 악의 목소리에 주의력을 빼앗기지 말자.


(..)

이렇게 말한지도 벌써 몇 개월 째다. 지겹지도 않은가. 스스로 내뱉은 말이 이토록 무게감이 없는 사람이라니. 가장 멋진 사람의 유형 중 하나는 바로 말에서 묵직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한다면 정말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주변에 대한 책임감도 크다. 그는 결코 빈말을 남발하지 않는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수다에 삶의 귀중한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다. 그는 내면으로 침잠하며 그곳에서 세상의 순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삶을 산다. 그 결과 세상은 균형과 리듬과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세상에 늘 어딘가에는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든, 인류의 문명이든.


(..)

인간다운 삶, 존엄한 삶은 법전에 몇 문장 끄적인다고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사람 위에 법이 있는 게 아니라 법 위에 사람이 있다. 법도 결국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다시 말해 인간을 위한 도구여야 맞지 그것을 넘어 인간을 지배하고 굴복시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그것이 순전히 기계의 오작동이었음을 가는 순간 모든 근심과 각종 상상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것이 마음이 지닌 놀라운 힘이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은 단순한 클리셰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삶의 이정표로 삼아야 할 진리 그 자체다. 인간은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의 장면을 창조해 내는 존재가 실로 맞는 것이다.


그런 위대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매번 마음에게 휘둘린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것에 지배받는 사람은 어리석고 간사할 수밖에 없다. 삶의 숙제는 그런 삶에서 빠져나와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이리라.




22.09.30 (금)


(..)

하나씩 따지다 보면 결국 전체로 귀결되는 것이 동양철학에서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

바딤 젤란드는 말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남들이 할 줄 아는 것은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신 자기만의 길을 굳세고 당차게, 끈기 있게 걸어온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빛과 색깔-우리는 그것을 '개성'이라 부른다-을 지닌 사람이 바로 결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라고 말이다.


(..)

활의 세기를 계속해서 키워야 한다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평균이라는 단순한 수치에 근거하여 내리는 그런 판단은 위험하다.평균은 참고로 삼기에는 많은 것을 반영하지 못한 수치다.


옷에 주름이 져서 높고 낮은 곳, 그늘진 곳과 밟게 드러난 평야와 같이 판판한 곳을 다리미로 일괄적으로 반듯하게 다려버리는 것이 평균을 구하는 방식의 원리다. 다리기 전의 옷의 상태가 지니고 있던 고유한 모습과 상태는 다림질이라는 획일적인 방식에 의해 사라지고 없다. 평균은 해당 표본과 관련된 여러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지 결코 그것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

나다움은  자체로 빛나는 보석과도 같다. 나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은 원석을 제련하는 것에 빗댈  있다. 나다움을 찾은 사람에게 세간의 각종 방법론은 하나의 부차적인 , 필수가 아닌 선택에 불과한 것이다. 최고의 마케팅은 마케팅개론학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의 퀄리티에 있다는 말처럼, 나의 가치가 세상에 드러나는  있어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가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는지다.


삶은 끝없는 제련과 세공의 과정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빛과 색을 타고난 원석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상을 보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동료와 스승을 만나는 지가 곧 삶이라는 제련 과정의 질을 결정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저마다의 필요와 목적이 있다. 바로 우리라는 원석을 가공하여 보석으로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니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가슴을 열고 기꺼이 경험하려 하는 수용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마음과 이성이 할 일은 그것의 싫은 점과 불편한 점만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응원해 주는 일이어야 한다.


육체와 영혼과 마음이 삼위일체를 완벽하게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 펼쳐진다. 그때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해진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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