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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20. 2023

癸卯년 甲寅월 세 번째 기록

주간단남 2월 3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3.02.14 (화)


(..)

일정이 바쁘다. 이렇게 늦게 일어나면 곤란해. 물론 종일 컨디션을 맑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무식하게 밤을 새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마음을 차분하게 유지하자. 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결정했으면 다른 길을 자꾸 생각해서는 안돼. 그래야 몰입이 가능해지고 몰입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성과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법이야. 그게 무엇이든 간에.




23.02.16 (목)


(..)

잠을 포기하는 건 삶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말이다. 어쨌거나 내 일상은 균형점에서 살짝 벗어나있지만 어떻게든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 부처와 일을 해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관료제는 정말이지 주객이 전도된 매우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오랜만에 모닝페이지를 쓰니 마음이 편하구나. 하루를 시작할 동기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도 아침을 시작할 동기 정도라면 나의 하루가 어떻게 될 예정인지에 관계없이 더 잘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동기도 아니고 어떤 아침 루틴을 갖고 있느냐도 아니다. 그냥 충분한 양과 질의 수면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그것이 충분하다면 만사가 절로 해결된다. 알람이 없이는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못하는 삶은 어딘가 근본부터 문제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예전에 일을 할 때도 느꼈고 지금 이렇게 단기간이지만 프로젝트성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난 이렇게는 도저히 살수가 없겠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여유를 앗아가는 빡빡한 일정과 그 문제를 악화시키는 적체된 불통의 이슈들.

국고가 애먼 곳으로 새어나가고 있는 의미없는 현장들을 눈으로 보고 있자니 그 비효율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구나. 개인도 가계부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수입과지출계획을 철저히 세우지 않으면 돈이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나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국가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꼬여 있어서 어디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곘는 매듭처럼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이해 당사자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 이 모습은 나랏돈이라는 공공재를 두고 펼쳐지는 '공공재의 비극'을 보는 것만 같다. 

이런 식의 보여주기식 행정, 요식행위들이 너무나도 싫다. 내 삶에도 그러한 요식 행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실속은 없이 빈 껍데기만 둥둥 떠다니는 말과 행동들. 당국의 요식행위가 권위를 만든다면 개개인의 요식행위는 원활한, 다른 말로는 겉보기에는 번지르르한 그럴듯해 보이는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듯하다.

(..)

자꾸 불확신을 갖지말고 필요한 것들만 적당히 챙기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니 그저 주어지는 매 순간을 묵묵히 살아내자.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이 절로 이루어지리니.

(..)

내면을 살핀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외부는 결국 내면의 투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책에서 말하듯 내면을 중시한다는 게 산 속에 들어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라는 걸 뜻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 설령 그렇다고 한들 눈만 잠깐 감으면 들려오는 그런 소리를 따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구나 각자만의 방식과 과정을 통해 근본적 진리를 향해 가게된다는 개별성과 필연성을 두루 갖춘 것이 내면에 대한 탐색이라 할 수 있다.




23.02.18 (토)



(..)

삶과 죽음은 늘 인간 개개인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 사람의 인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여기에 뒤따르는 대답이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 사람이 지나온 흔적이다.



(..)

이것을 단지 효용의 체감이라는 경제적/심리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다. 이처럼 특정 프레임 혹은 방법론은 현상의 일부분만을 조명하기에 결코 전체를 볼 수 없게 만든다.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 역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인간은 정녕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일 뿐인걸까?



(..)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그 여파가 미치는 책임감이 막중한 일을 맡는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되는 일이다. 타인의 이해관계대로 흘러가는 삶은 살고 싶지가 않다.



(..)

이래서 나는 내 일을 해야한다. 혹은 믿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하거나.



(..)

이번 주말과 평일 며칠만 더 고생하자! 그리고 과감히, 더욱더 힘차게 자유를 향한 날갯짓을 계속 해나가자. 나는 자유로울 때 가장 나다운 사람임을 결코 잊지 말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말자. 내 삶은 내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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