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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Feb 14. 2023

癸卯년 甲寅월 두 번째 기록

주간단남 2월 2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3.02.06 (월)


(..)

주말에는 푹 자버리느라 모닝 페이지를 Pass 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평일 수면 양 혹은 질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닐까?

(..)

명리학에서는 한 해의 실질적인 시작을 알리는 기점이 입춘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계묘(癸卯) 년의 시작인 게다. 혹자는, 과거의 내가 그랬듯, 늘 같은 하루하루일 뿐인데 입춘이라고 이름 붙이면 갑자기 특별함이 깃들어서 전날은 지난 해이고, 다음날은 새로운 해가 된다는 것을 인간이 임의로 만든 개념일 뿐이라며 우스워 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조상의 슬기는 때로는 우리의 상식 그 이상일 때가 더 많다. 24절기 역시 그런 많은 예시 중 하나일 뿐이다.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오늘이더라도 어떤 경계점을 넘어온 하루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의미를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붙인 것도 물론 있겠으나 24절기라는 개별 지점들은 모두 태양이 공전 궤도상에 머무는 위치에 따라 지구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늘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이런 미묘한 달라짐을 조상들은 발견해 낼 줄 알았던 것이다.

(..)

언젠가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에스프레소 바들. 이건 마치 스타벅스가 처음 국내에 상륙했을 때와 비슷한 것 아닐까. 몇 년 후엔 언제 안 그런 적 있었냐는 듯이 모두가 에스프레소를 일상적으로 홀짝이고 있을 때가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획일화된 방식으로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어제 갔던 결혼식장 뷔페의 디저트 코너에서 빵과 케이크류들은 몇 번이고 리필이 되는데 떡들은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질 않더라. 뒤이어 방문한 에스프레소 바에는 자리를 가득 채운 인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에스프레소 잔들을 테이블에 잔뜩 쌓아두고 마시고 있는 것을 보니 묘한 감정이 든 것이다.

시류에 떠밀리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것 또한 삶을 사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기준은 세상이 제시하고 개인은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삶. 사실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행대로만 사는 사람이나 유행을 좇지 않으려는 사람이나 부정할 수 없는 공통된 점 한 가지는 우리 모두는 타인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국가, 더 크게는 그 시대의 영향을 받고 산다는 것이다.

(..)

내 삶에서 언젠간 교육이란 걸 할 것 같다. 내가 이상적인 방향을 향해 매 걸음을 내딛는 것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나와 같은 마인드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될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의 일부는 반드시 어떤 형태가 되었건, 어떤 세부적 주제가 되었건 교육과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에 들었다. 그간 너무 서로 달리기만 했었나 보다. 이렇게 아무 목적도 없이 보내는 시간은 혼자서도 필요하지만 둘의 관계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새삼스럽지만 자신의 현 상황이 어떻든,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야 어떻든 누구나 삶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쫓기든 살면 될 것도 안 되고 만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만큼만 자유로워진다고 과거의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23.02.07 (화)


(..)

이게 바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의 가장 헷갈리는 지점이다. 내면의 소리라고 그냥 속마음이 말하는 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 글 중 내가 따라야 할 목소리, 다시 말해 참자아의 목소리는 무엇일까? 그러나 우스운 것은 참자아라는 존재는 그저 가만히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자다. 그러면 이렇게 내면을 불안하게 하는 정체는? 에고가 분명하렷다!

에고로 갈 것도 없이 간뇌, 즉 파충류 뇌의 편도체가 반응하는 지극히 1차원적인 수준에서의 투정일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

신기하게도 입춘이 지나고 계묘년이 실질적으로 시작되자마자 마치 봄의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듯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일들이 한 번에 시작이 되고 있다. 입춘을 전후로 새롭게 변한 것만 해도 제법 리스트 업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유념해야 할 것은 지금의 상황은 아마도 내가 컨트롤하고 유지할 수 있는 균형의 최대치일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더 무리를 했다간 아마 삶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제 일을 시작하면 당분간 피아노는 주말에 연습하고 평일엔 공부에 집중하자.

(..)

그래 시간에 제약이 생기면 오히려 그 시간을 채우는 밀도가 달라지는 법이다. 생명체도 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 자랄 때, 균이 적당히 있는 환경일 때 더욱 강한 면역력을 갖듯이.

(..)

그것은 지금 마치 모든 진리를 알았고 그것을 몸소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믿고 있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의미 한 가지는 확실히 있다.

(..)

믿음과 확신은 다르다. 믿음은 응원에 가깝다. 증거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직접 가봐!라는 식의 힘을 주는 것이 믿음이다. 확신은 그렇지 않다. 확신은 옳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믿음의 대상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가치관이나 지식 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대상이 믿음을 얻었을 때, 혹은 스스로가 그런 믿음을 부여했을 때 샘솟는 감정이 확신이다. 확신에는 믿음이 필요하지만 믿음에는 확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믿기로 선택하지만, 결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믿음은 마음의 여유를 주지만 확신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믿음과 별개로 확신이 지나치게 커지면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한 감정이 들기 쉽다. 언제나 내가 무언가에 지나치게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지금의 내 일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 있었는지를 통화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 짧은 통화 하나만으로도 내가 손에 얼마나 많은 것을 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를 한 번에 하는 게 꼭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무엇이 주이고 무엇이 부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내가 놓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그 외의 것은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땐 과감히 내려놓았다가 다시 여유가 생길 때 집어올려도 무방할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것을 완전한 이별이라고 생각을 하니 쉽사리 못 내려놓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도 한 번에 다 동시에 못할 만큼 내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휩싸이면서.



23.02.08 (수)


(..)

오래간만에 평일인데도 늦잠을 푹 자버렸다. 챌린저스의 미라클 모닝 챌린지는 당연히 놓쳤다. 그게 없으면 일어날 동기가 떨어지는 삶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러한 챌린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런 챌린지는 누군가를 움직이기 시작하게 만드는 촉발제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되지 않을까? 그것은 단지 마중물 역할을 하면 그만이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목적이 챌린저스에 인증샷 올리기 단 하나뿐이라고 밖에 달리 대답할 답이 없는 삶이 최종적으로 한 명의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일 리는 만무하다. 


그들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그들의 사명(mission)이 문득 궁금해진다.

(..)

늦게 일어난 나는 모닝 페이지를 패스하고 곧장 그다음 루틴으로 직결하려고 하다가 잠시 정신을 추스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봤다. 그게 우선순위에 맞는 행동인가? 아직 모닝 루틴을 할 시간은 있는데 모닝 페이지를 넘기고 글씨 연습으로 간다고? 내가 필체 교정 연습을 하는 이유는 사실 모닝 페이지를 더 잘 쓰기 위함이 아니던가. 

나는 어느새 '체크리스트 항목 지우기 놀이'에 빠져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뻔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그냥' 하지 말라. 그게 무엇이든 언제나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는 항상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이 상존해야 한다.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목적이 없는 것도 목적이다. 문제는 내가 뭔가를 할 때 그러한 사실을 주지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그냥 하지 말고 그냥 살지 마라. 머릿속 생각이 여기저기로 튀는 것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라.




23.02.10 (금)


(..)

정신을 맑게 유지하는 것이 내 운명의 성패를 결정지으리라. 물론 여기서의 성패란 내 주관적 기준이 우선적으로 결정한다. 남들에게 받는 인정은 스스로의 기준을 충족시킨 자에게 뒤따를 수도 있는 수순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 자체가 본말이 전도되고 말 것이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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