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참지 못하고 화를 내게 되는 이유

내 안의 발작버튼 자각하기

by 청윤 단남




우리는 왜 화가 날까? 아니, 왜 화를 내는 것일까?



분노나 화에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가장 근본적인 동기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에 있다. 인간도 생명체라는 점에서는 여느 동식물과 다를 바가 없다. 과거 원시시대 때부터 '생존'에 유리한 종이 꾸준히 살아남아 온 것이 진화론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그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습관들이 문명을 이루고 사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 그게 생명체의 본능적인 기제이다.


그 습관이 남아 육체적 생존에 대한 위협 대신 자신의 심리적 생존, 즉 '자아'를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바로 분노나 화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방어나 항변일 때도 있고, 상대의 아니꼬운 모습을 고쳐주고 싶다는 우월감과 선민의식의 발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것으로 포장하든 기저에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옳고 당신은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고군분투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과 철저히 자신을 분리하여 효과적인 설득 도구로써 활용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자신만의 기준이 정답이 아니라는 건 적어도 머리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실전에 적용이 어려울 뿐이지. 누구나 자신의 자아(ego)가 위협에 처했을 때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기 쉽다. 훌륭한 과학자의 자질은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위대한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이 언제라도 새로운 반례가 나오면 뒤집히는 '일시적 가설'에 불과함을 아는 데에서 비롯된다. 학문도 그럴진대 우리의 감정은 오죽하겠는가.


언제든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 평생 옳다고 믿고 살아온 신념이나 가치관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그름을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평생의 삶을 나의 옳음만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을 그름으로 정의하며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만의 신념을 굳게 견지하되, 동시에 언제든 변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늘 같은 패턴에 분노가 치민다면, 어떤 기준이 그러한 감정을 유발하는지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게 나만의 발작버튼일 테니.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나만의 정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변화를 고려해 봐야 할 때다. 태도가 바뀌면 감정도 자연스레 바뀌는 법이다.


주어진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 관점마저 변하지 않는다면 감정도 당연히 변하지 않는다. 감정은 태도의 부산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태도와 관점을 달리하면 감정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굉장히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상황에 대한 조망을 할 기회조차 없이 곧바로 감정에 사로잡혀 버릴 때가 그렇다. 나는 그것을 '감정의 덫' 혹은 '감정의 늪'이라 부른다. 여기에 일단 빠져버리면 즉각적인 조율이 어렵다.


KakaoTalk_20230315_215247838.jpg 님아 그 버튼을 누르지 마오


다른 관점의 선택의 가능성일랑 상상조차 못 한 채 오로지 단 하나의 가능성만이 존재 (즉, 내 감정이 옳다) 함을 증명하기 위한 온갖 생쇼와 몸부림이 펼쳐진다. 조금만, 단 하루라도 지나면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유치 찬란한 생떼에 불과한지를 깨닫게 될 텐데 말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자신의 발작 지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자극받기 시작하여 감정의 덫에 사로잡히기 직전까지 그 찰나에 어떤 느낌이 드는지 평소에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그때가 유일한 탈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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