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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r 27. 2023

癸卯년 乙卯월  세 번째 기록

주간단남 3월 3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3.03.20 (월)


(..)

어제 오랜만에 활터 월례회에 나갔다.이야.. 요 근래 들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기록이 나오지 않아서 분하다기보다는 혼자서 남다른 자세(옛날엔 더 일반적이었을)로 활을 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그 자세의 표본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오는 부담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기에 그저 시선을 바깥이 아닌 내면에 두는 게 현명한 처사이리. 그럼에도 옹졸한 사명감이라도 있는 건지 남들이 한 물 간 자세라고 생각하는 그것으로도 아니,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활쏘기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내 개인의 성적이 높은지 낮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간 차원, 다시 말해 남다른 자세를 굳이 하겠다고 나서더니 저게 뭔가 하는 인상을 적어도 몇 명에겐 남겼으리란 생각, 더 나아가서는 '거봐, 다수가 따르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데 그것을 애써 외면한 자의 필연적인 최후인 거야.'라며 자신들의 시류에의 무비판적 편승을 애써 합리화하는 방어기제를 내가 강화시켜버리고 말았다는 생각. 그런 일말의 가능성들이 어제의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어제 타로점으로 본 하루의 운세에서 조언으로 18번 달 카드가 나왔나 보다. 그 카드를 뽑고서는 오늘 뭔가 화살이 잘 안 맞긴 하려나 보다 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비단 화살이 잘 맞고 안 맞고에만 따르는 감정을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파생될 자의식 과잉에 따른 잡념에 대한 경고를 그 카드가 미리부터 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23.03.21 (화)


(..)

'나는 왜 기껏 일어나서는 다시 눕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 명쾌하게 말하면 할 게 없어서 그렇다. 그것이 출근같이 타인과의 관계가 얽힌 의무와 관련이 있는 식으로 내가 아닌 타인이나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그게 아니라면 순전히 나에게만 관련이 있지만 매일 아침 이불을 발로 차고 벌떡 일어날 만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거나.


그런 것이 없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잠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모두가 기본적으로 잠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서이거나 놀고먹느라 늦게 자기 때문이다. 그 명확한 증거가 바로 '알람'이다. 우리는 알람 없이는 미라클 모닝도, 규칙적인 생활도 전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병든 존재들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수면량과 취침 및 기상 시간을 찾고 유지한다면 사실상 알람이 필요가 없어지는 게 이상적인 건강한 상태의 모습이 아닐까?


(..)

조건이 갖춰지면 변화는 절로 일어난다. 일어난 것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에 있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만 시선을 빼앗겨 이런저런 헛된 노력을 하느라 감정과 에너지만 소모하고 있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현상이 있다면 현상을 만들어 낸 원인을 찾아야 한다.


(..)

1~2주 제대로 못 쓰고 또 게으름을 추가로 피웠더니 모닝 페이지가 막힘없이 술술 써지지가 않는다. 무슨 창작 행위도 아니고 생각나는 것을 그저 끄적이면 될 따름인데 막힐 게 무어라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게 있다. 뭔가 내 정신과 이 만년필을 쥔 손이 하나로 동기화가 되어 움직이는 그런 몰입의 상태가. 그게 자꾸 없는 채로 뚝뚝 흐름이 끊긴 채 꾸역꾸역 써 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든다. 매끄럽지 않게 나오는 만년필 닙의 잉크 상태도 이에 한몫한다.




23.03.22 (수)


(..)

어제 우연히 본 크리에이터 이연의 영상이 떠오른다. 남들에게 자주 지적받는 점이 있다면 그게 곧 자신만의 개성이고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본인만의 개성을 살리라는 말과 어찌 보면 같지만 표현의 쓰인 단어의 선택과 관점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전달력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만의 입지를 세운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을 곧이곧대로 답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일확천금은 일도 아니라며 떠드는 사람들은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다 알려줬는데 당신들이 실행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한 것이며, 그런 식이라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며 저주 아닌 저주를 내린다. 그들은 가스라이터다.


행동하지 않으면 고여서 썩은 물과 같이 될 수 있는 건 일면 타당하다. 그런데 그 행동의 양식이 반드시 그들을, 그들이 알려준 공식대로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협의로서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가스라이터들은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팩트를 섞은 궤변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올바른 멘토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지금 같은 자기 PR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모두가 한 손에 확성기를 들고 자기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옆집이나 앞집 것은 얼마나 부족한지 하루 죙일 떠들어 대는 저잣거리를 연상케 하는 것이 요즘 온라인 시장의 온상이다.


그리고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눈에 밟힐 정도로 반복해서 겨우 인상을 남기고자 애쓰는 것을 마케팅이라고 포장한다. 조금만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는 마케팅 기법이나 정신(요즘 누가 '정신' 같은 것에 대해 궁금해하겠느냐마는)은 마케팅의 광의의 개념으로 정의한 듯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멈춰 서서 자신들의 회사나 제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만든다면 어떤 과정이든 어떤 방법이든 다 OKAY!라고 외치고 있으니.


가령, 통상 구매 전환율을 10%라고 잡을 때, 낭비되는 90%의 노출에 쓰이는 여러 자원들은 엄연히 수반되는 비용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자신만 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모두가 낭비되는 90%에 대한 의문보다는 그저 그 시류에 편승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관심도 없는 광고에 노출됨으로 인해 생기는 정신적 피로도가 쌓이는 것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다. 정작 그들 자신도 '마케터'로서 퇴근 후에 전철역 근처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을 환멸의 눈초리로 보면서 세상 바쁘다는 듯이 그들의 손을 뿌리치면서 '이런 것 좀 안 나눠주면 안 되나?'라고, 속으로만, 외쳐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하는 마케팅은 그런 단순 전단지 홍보와는 결과 급이 다른 것이라고 자위한다. 과연 그럴까?


시중의 마케터 중에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진짜배기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회사를, 제품을 알리는 것에만 급급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을 흉내 내기에만 바쁠 뿐이지, 그 노력의 과정에서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윤리적 문제나 환경적 문제 등 '이윤 외적인' 문제들에 대해 관심과 책임 의식을 갖는 자가 몇이나 되느냔 말이다.


(..)

지금 사회는 변화의 격동기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기득권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 기존의 만조가 가고 다가오는 간조에 대해 '간조가 오면 모두가 굶어 죽을 것이다!'라는, 마치 '내 경고는 내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야!'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유지하기 위함인, 그런 모습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출산율 저하부터 시작해서 해외의 무슨 은행이 파산했다, 부동산이 위기다 등등 태동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안위를 확보하려는 자들의 거짓 경고가 판을 친다.


정말로 대의를 위해서 공공의 선을 위해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 면모를 지닌 자의 경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별 수 있나, 그게 이 시대의 모습인데. 분별심을 내려놓자. 그리고 나 스스로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자기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던 부처의 마지막 말(자등명 법등명)을 떠올리며.




23.03.23 (목)


(..)

나는 합리적 증거보다 내 직관이 내린 판단을 대체로 더 신뢰한다.


(..)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책을 펼치자.


(..)

나는 어쩌면 지금 이미 원하는 삶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음악(피아노)가 있는 삶, 정신 수양(활쏘기와 명상) 그리고 끝없는 배움과 그것의 활용 및 적용. 타인과 사회를 위한 좋은 의도를 품은 일들. 그래, 내가 지향하는 삶을 나는 이미 이룬 것이다. 감사하다. 다만 단 한 가지, 그것이 지속 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나와 내 주변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지속 가한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만 보완하면 말이다.


(..)

투자나 재테크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자. 이건 비단 돈에 대한 공부인 것을 떠나서 세상을 이루는 욕망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다. 인간의 본능과 직결되는 인간의 '발명품' 중에 돈만한 것이 없다. 그만큼 돈의 흐름은 인간의 본능이 자아내는 적나라한 욕구 표출을 각종 이론과 숫자라는 있어 보이는 장막으로 가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이해가 세상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길을 인도할 것이다.


(..)

전자책을 잠시 보류할까 했지만.. 내버리자! 내버리고 일단락 시키자. 뭔가 그냥 덮어버리려니 마음에 걸린다. World 카드의 조언대로.. 아니 그게 완성도를 더 높이라는 게 아니라 이미 결과물은 완성되어 있다고 리딩을 해도 되는 것 아닐까?


(..)

매주 1회 투고를 꾸준히 하는 것을 원칙으로 글쓰기 습관을 다시 만들어 나가 보자.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라는 시니컬한 관점을 너무 냉담하지 않게 적절히 유머를 섞어서 드러내는 것을 컨셉으로 잡고 일상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들의 근본에 깔린 심리를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유추해 보는 것이다.


(..)

나는 직업이 여러 개인 사람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다. 진리 탐구와 활인을 하는 명리, 타로 기반의 상담 및 컨설턴트이자 철학자이며, 글을 쓸 땐 작가이다. 활을 쏠 댄 궁사이며, 피아노를 칠 땐 피아니스트다.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조금은 진지한 마음, 그리고 모든 것을 잊고 그 순간과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몰입의 경지를 조금은 더 가능하게 만든다.




23.03.24 (금)


(..)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절로 고개를 숙인다. 그것이 복종이든 경의이든 간에.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연속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흐르기만 하던 삶에 비록 찰나와 같을지언정 쉼표 하나를 찍어준다. 그래서 우린 늘 죽음이 가까이에 있음을 매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의식적인 삶, 주체적인 삶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메멘토 모리. 매일 가슴에 되새기자.


(..)

4월도 바쁘게 흘러가겠구나. 4월이면 1분기의 마지막 달이다. 이쯤에서 올 한 해의 시작점에 세웠던 계획을 다시 펼쳐볼 필요가 있겠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었고, 어떤 목표들을 세워두었는지 벌써 다 잊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목표는 늘 눈이 가는 곳에 붙여두어서 항시 떠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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