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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pr 03. 2023

癸卯년 乙卯월 네 번째 기록

주간단남 3월 4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3.03.26 (일)


(..)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계속 틀리는 지점이 있을 때 그것이 왜 그러는지 분석하고 바로잡기 위한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귀찮다는 이유로 안일하게 연습량만 늘리면 점차 그 오류의 습관도 함께 무의식 깊숙이 각인될 뿐이라는 말.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같은 주제로,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 갈등 양상을 보인다면 그것의 원인에 대해 상호 분석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시간이 어련히 해결해 주겠거니 하며 관계의 기간만 늘려나갔다간 맨날 같은 주제로, 같은 패턴으로 싸우는 관계로 고착될 뿐이다.

(..)

타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드를 뽑을 때부터 이미 불신의 마음이 투영되고, 나온 결과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한 번 듣고는 흘려 버리고 멋대로 행동하기에 카드를 뽑을 당시 담겼던 순간의 역동성에 온갖 새로운 변수에 추가된다. 그러니 맞지 않을 수밖에. 그렇게 타로점이 빗나갔다는 결과론적인 사실만 기억하며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타로에 대한 불신을 강화할 뿐이다.

그게 인간의 인지 과정의 본질이다. 누구나 자신이 보는 것만 보고 믿는 것만 믿어서 선택적으로 구성된 시야와 의식 속에서 만들어 낸 개별 세상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세상이 있고 그 속에 우리가 모두 모여 사는 게 아니다. 하나의 세상이 있지만 각 개인의 시점에서 본 세상은 100인 100색이지, 단일한 하나의 세상이 결코 아니다.




23.03.29 (수)


(..)

먼 훗날에는 지금 시대와 같은 무분별한 광고, 홍보가 불법인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광고에 무의식적으로 노출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어째서 그런 무차별적 광고 폭격기의 융단 폭격을 받아 쑥대밭이 된 채  멍-하니 홀려서 지갑을 열고 자진납세하는데도 자신이 자발적으로 지갑을 연 것이라 믿는 우리 소비자들이 피해자가 아닌 걸까? 왜 누구도 여기에 진지한 관심을 갖지 않지?

개인 정보도 그렇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랍시고, 데이터 사이언스랍시고 이뤄지는 온갖 개인 정보와 행동 양식의 수집과 분석 역시 나는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합법적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합법이면 다 옳은 것인가? 법적 규제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니 생기는 일시적 합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모두가 더 깨어난다면 이 두 가지 주제는 반드시 윤리적, 법적 도마 위에 오를 것임을 확신한다. 아니, 그래야 마땅하다.

(..)

자기 자신이 불만족을 느껴서 생기는 생각과 감정은 모두 이기심이 기반이 된 동물적 본능과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를 위한, 가령 정의를 위한 동기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자기중심적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해 가긴 어렵다. 그 부당함이 행여 내게도 피해를 끼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그것의 부당함의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에게는 불편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는 일에 우리는 쉽사리 분노하기보단 무관심과 냉소를 보내는 데에 더 익숙한 존재들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으로 스스로의 자존감과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느껴서 붙잡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타인은 모두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자기만족과 이를 위한 타인의 도구화. 이것이 현대사회 인간관계의 온상이다. 이 거대한 패턴을 우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성장과 성숙의 첫걸음이다.

(..)

사이비는 본인이 사이비라고 하지 않는다. 또 본인이 사이비가 아닌 이유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정말 아니라면 그걸 해명할 필요도 없다. 의혹 자체가 제기되지 않을 테니. 진짜는 입을 닫는다. 가짜만이 떠든다. 그런데 그렇게 떠드는 게 합법인 세상이라 사람들은 떠드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주의를 빼앗기고 끝내 믿음을 줘버리고 만다. 진짜가 더더욱 눈에 띄기 어려운 세상이다.

(..)

바쁜 게 미덕이고 자랑거리가 되는 세상. 정상과 비정상은 시대가 규정하는 만큼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 기준을 고스란히 따르기보다는 내 기준에 맞춰 판단을 내려보고자 한다. 지금 시대는 비정상이다. 바쁜 게 권위가 되는 세상. 사람은 바빠야 좋은 것이라는 개념에 잠식당한 군중들. 이건 집단적 광기다. 사이비 종교보다도 때로는 이게 더 미친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23.03.30 (목)


(..)

내 아침 루틴들은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다. 집착이 아닌 장인 정신으로. 그게 흔들림 없는 일상과 그런 일상을 닮은 단단한 내면을 만들어 주는 기반이 되므로.

(..)

실업률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개인이 문제라는 입장과 시대가, 정부가, 기업이 문제라는 입장. 무엇이 옳을까? 당연히 둘 다 일리가 있다. 어느 한 쪽만이 답일 리 만무하다. 논쟁이 펼쳐지는 주제는 말을 바꾸면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색안경을 끼고 자신의 입장에서 손해 보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주장을 펼치기에 이러한 논쟁은 서로의 입장에서 피해의식과 보상심리를 지점이 부딪힌 결과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주장을 펼치는 당사자들이 마치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하는데에 있다. 그 결과 상대의 주장이라는 결과물을 접했을 때 본인 기준에서는 옳지 못하다 여겨져도 상대가 어떤 맥락과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의도로 그런 주장을 펼쳤을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등의 궁금증을 가져볼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23.03.31 (금)


(..)

장인 정신과 완벽주의는 다르다. 완벽주의를 극복해 낼 때, 신경 쓰지 않고 뭐라도 써낼 때, 그때 비로소 어떤 행위에 대한 스스로 짊어진 부담을 덜어내고 장인의 경지로 가는 첫걸음을 딛는 것이다. 프로가 되려면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결과물은 완벽해지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더 완벽에 가까워진다. 

검열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연습은 모닝 페이지로 쭉 해오지 않았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펜을 손에서 놓지 말자. 그렇다고 너무 꽉 쥐지도 말고, 딱 알맞은 정도로만. 삶의 중요한 무기를 놓지 말자.

(..)

재료 보는 눈이 없어도 본인이 요리할 재료를 직접 고르는 것과 일반 요식업에서 하듯이 식료품을 주문해서 받아쓰는 것에는 시작부터 '정성'의 농도가 다르다. 설령 후자의 경우가 더 좋은 재료를 썼다고 하더라도 극과 극의 퀄리티 차이가 아니고서야 정성이라는 '마음의 미각'에 대부분은 더 깊고 진한 맛을 느끼는 법이다.

커스텀이야말로 공유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남들 다 가는 핫플레이스를 나도 갔다고 인증하고 싶어 하는 '1세대 인증'에서 대중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을 원한다. 바로 남들은 모르는, 멋진데 아직 나만이 아는 것. 그런 형용 모순처럼 들리는 어떤 것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형용 모순이듯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설령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지언정 그것이 정말 뛰어나다면 유명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스텀은 그럼에도 그것을 가능케 한다. 나만을 위한 메뉴, 내가 과정에 개입한 메뉴라는 고유성. 그것이 자신의 경험을 특별한 그 무엇으로 느껴지게 해주는 게 아닐까.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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