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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pr 07. 2023

면치기가 뭐 어때서?

개인적 불호를 예의로 포장하지 않기

건조한 대기를 적셔주는 반가운 단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요즘, 부쩍 커진 일교차에 식사 시간에 뜨끈한 국물 요리가 당겨서 동네 칼국수집을 찾았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다소 늦은 점심이었는데도 가게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여기저기에서 면을 흡입하는 각양각색의 소리가 들려온다. 짧고 굵게 치고 빠지는 소리,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부드럽지만 진득한 소리, 입 크기가 궁금할 정도로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소리까지 듣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듯 입안에 군침이 맴돈다.



그러다 문득 한때 화제가 됐던 '면치기 논쟁'이 떠올랐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배우 이정재 씨가 칼국수 비빔면을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면을 호로록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듯 먹는 소위 '면치기'를 하지 않고 조용히 끊어 먹은 것이 주목을 받은 것. 이에 패널들이 먹는 방법을 모른다며 핀잔을 준 모습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면치기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출처: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출처: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예절이란 무엇인가



당시 네티즌들은 이정재 씨가 식사 매너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이라며, 언제부터 소리 내면서 먹는 것이 우리나라의 식사 예절이 되었냐고 이영자 씨를 비롯한 패널 측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세웠다.



면치기가 식사 예절에 어긋나는 행위가 맞는지를 논하려면 우선 예절(禮節)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전을 보면 예절이란 '예의에 관한 모든 절차나 질서'라고 나온다. 예의는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고 나와있다. 즉 예절은 상대를 존중하기 위한 의사를 몸짓이나 말투나 그 밖의 다른 행위 등을 일정한 양식을 통해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사 예절은 식사 자리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첫째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요, 둘째는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면치기는 식사 예절에 어긋나는 행위인가? 나는 두 가지 요소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상대의 존재(더 확장하면 주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까지)이고, 그것을 고려하는 나 자신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성향과 그것을 감안하여 행동양식을 결정하는지가 예절의 여부를 논하는 관건이라는 것.



상대의 성향을 예로 들자면, 나는 면치기에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더 복스럽고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내 앞에서 면치기를 한다고 해서 나는 그를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먹는 도중에 내 음식이 버젓이 있는 쪽으로 트림을 한다면 나는 그가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행위를 통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상대의 성향이 중요하므로 식사 때마다 상대의 성향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맞춤형 처방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편리성을 위해서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보편성을 띠는 행동 양식을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그 보편성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먹방과 ASMR의 시대



대한민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내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음식을 먹지 않을 때조차도 음식에 관한 각종 콘텐츠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각종 먹방은 물론이거니와 음식을 먹는 소리까지 자세히 들려주는 ASMR(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감각적 자극으로부터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나 심적 안정감)까지 있을 만큼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친숙해진 시대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가 옳은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그에 따라 보편성의 기준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식사 때 쩝쩝대는 소리와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대는 소리는 먹방과 ASMR시대에도 활용되지 않을 만큼 여전히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행위로 보편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유독 면치기만은 예외가 된 것 같은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 과거의 기준만을 가지고 식사 시 소리 내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는 게 맞는 걸까? 어쩌면 예의가 아니라 교양의 영역으로서 면치기 이슈를 바라보며 상대를 폄하하고 자신은 우월하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 불호를 예절로 포장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책 <1%를 위한 상식 백과>에 따르면 각종 예법이 존재 이유는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또한 예의는 법에 의해 강제되는 행동규범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나로 인해 상대가 혹여 불편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실천할 때 그것이 예절인 것이다. 내가 불편하고 거슬리기 때문에 상대에게 이래라저래라 강요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면치기 소리가 거슬릴 수도 있고, 거슬리지 않을 수도 있다. 거슬리지 않다면 그냥 두면 되는 것이고, 거슬린다면 상대에게 자신은 면치기 소리가 불편한 사람이라고 알려주면 되는 것 아닐까.



앞서 예의는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사를 겉으로 드러내는 양식이라고 했다. 상대가 불편하다는 것을 버젓이 안 상황에도 자신이 맛있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면치기를 고수하는 사람은 그제야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예의라는 것은 결국 서로 다툼과 갈등 없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그것을 경전처럼 떠받들 필요까지는 없다. 법전처럼 명문화되어있지도 않은 영역인데 자신의 기준이 정답이고 보편성을 확보한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칼로 무를 자르듯 정확히 나눌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지, 자신의 기준을 내세우며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무식한 사람 취급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런 존중이 결여된 태도는 이미 출발점부터 예절을 논할 자격이 없다. 뭐든 기본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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