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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ug 07. 2023

끌어당김의 법칙과 명리학은 상충하지 않는다.

만물을 꿰뚫는 원리는 부르는 표현이 다를 뿐, 결국 하나일 것. (c)pixabay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일컫는 일체유심조의 관점과 주역이나 명리학 등 운명학에서 말하는 내용은 자칫 상충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전자에서는 큰 방향과 목표를 세우고 그려내되, 구체적 과정까지 모두 자신이 그린 시나리오대로만 풀려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에 후자는 운명의 큰 흐름이 정해져 있다 말하지만 그것의 최종적인 완성의 변수는 운명의 주인에게 달려있다 말한다. 

두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 삶이란, 내가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정확히 말하면 어쩌면 전생의 내가, 아니면 이 생에 태어나기 전의 임시로 머무는 공간에서의 영혼 상태로 존재하던 내가 짜둔 설계도대로 그린 또 다른 밑그림과 서로 조화를 이뤄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각각 날실과 씨실이 되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미래의 내가 되는 것. 이것이 삶이고 운명이 아닐는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유 없이, 의미 없이 내게 드는 생각과 감정은 없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도 다 그런 커다란 밑그림의 일부다. 내가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 그 그림이라면 나라는 존재는 그 붓의 머리에 해당한다. 나의 궤적이 곧 그림이고, 삶이라는 작품을 자아낸다. 그것을 그리는 주체를 신성, 참나, 영혼, 과거의 나, 어느 것이라 부르든 그 존재 또한 결국엔 나다.

그건 내 옆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린 모두 하나다. 이 연대감에 대해 늘 상상해 보고 그 느낌을 느껴보려 해야 한다. 상호 간의 불신과 폭력, 판단과 분석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과 연민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네가 다르지 않고, 하나의 근본에서 비롯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속 분별심에서 자유로워진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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