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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Sep 25. 2023

오늘을 소중히 살아내고 있나요?


같이 일하시던 분께서 갑작스레 심정지로 하루아침에 명을 달리하셨다. 평소에 튼튼하지 않은 부위가 최근 누적된 과로로 인해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 원인이라 사람들은 추측한다. 남의 명은 봐도 자기 명은 보실 수 없으셨던 것일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식장은 조촐했고, 남은 가족들의 통곡 소리만이 그곳의 공기를 묵직하게 만들고 있었다. 테이블에서는 고인에 대한 이런저런 미담이 나왔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고, 가슴이 먹먹했다.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조문객들은 모두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과 남은 가족들의 안위의 안녕을 바라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이 되신 분의 명복을 다시금 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씩씩하고 굳건하게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매일 아침 메멘토모리(memento mori)를 읊조리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아직도 내게 죽음이란 개념은 멀게만 느껴지는가 보다.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아 인연이 깊지는 않아도 매번 나를 잘 챙겨주시던 따뜻함이 느껴지던 분이셨는데. 늘상 보던 사람이 예고도 없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계묘년 신유월 무인일. 누군가에겐 '절'에 해당하고 누군가에겐 '생'에 해당한다. 누군가에겐 '제왕', 누군가에겐 '사'에 해당한다. 누군가 명을 달리하는 날, 어딘가에선 누군가 태어날 것이다. 그게 자연의 순환성이다.

삶이 펼쳐지는 양상인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고 유지하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겸허함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소박한 삶이든 거창한 삶이든 그건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편협한 기준일 뿐이다.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모두의 삶에는 주어진 각자만의 소명이 존재한다. 그 소명을 구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것만이 생명이라는 경이로운 에너지를 선사한 우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자신 안의 자기다움을 궁구 하는 것.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 그리고 나아가 세상 모든 이들이 이와 같은 '각성'을 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사랑하기를, 이웃과 가족과 지인들을 사랑하기를,

세상에 따스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를,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기를,


늘 곁에 존재하는 죽음을 벗삼아 그와 함께 떠나갈 적에 떳떳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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