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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Dec 02. 2023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울릴 일이 사라진다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 속에 사는 법

나는 자동차 경적(클락션)을 잘 누르지 못한다. 하고 싶은데 못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능적인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보면 가볍게 '방. 방.' 거리며 마치 시티팝의 잔잔한 베이스음 같은 소리를 잔잔바리 스타카토 주법으로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적 버튼에 자신의 온 체중이라도 실었는지 큰 소리를 '빠-앙!' 내며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며 두 귀를 막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노하우나 스타일이 있는데 나는 그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운전하면서 경적을 잘 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마음속 등불처럼 안고 살아간다. 나의 환경이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을 정갈하게 갈고닦으면 환경도 절로 정리된다고 믿는다. 그것을 가장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이 운전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본심을 털어놓게 만드는 마법의 묘약을,, 아니 술을 만취할 때까지 먹이는 것이고(이때 나도 취하면 말짱 도루묵이니 먹는 시늉만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운전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액셀을 밟을 때나 코너링을 할 때 부드럽고 섬세한가, 투박하고 거친 편인가. 누군가 깜빡이를 켜고 앞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속도를 줄이고 양보할 준비를 하는가,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라며 속도를 내어 틈을 내어주지 않는가.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차가 출발하지 않을 때 기다리는 편인가, 금 같은 상대방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주기 위한 사려 깊은 마음으로 신호가 바뀌는 그 즉시 경적을 울리는 편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고마움과 사과의 표시로 비상등을 누르는가, 혹은 점멸하는 비상등의 불빛이 혹여나 상대방의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생략하는가.


주의 깊게 관찰을 해보면 신기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특정 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차가 가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해 0.1초 만에 경적을 울리는 사람은 신호가 바뀔 때 앞차가 늦게 출발하는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를 켤 때마다 뒤차가 쌩 하고 달려서 자신의 진입을 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양보를 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경험을 통해 그런 성향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일체유심조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마음이 그런 현상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면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5명을 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대부분은 방점을 그의 '주변 사람'에 찍으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5명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지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요한 건 주변이 아니라 당사자의 마음에 있다. 주변인과 주변 환경은 당사자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 뿐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거나 좋은 환경에 놓이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자신의 주변 환경을 좋게 만들어야 나가야 한다. 비폭력 해방 운동을 실천했던 간디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신이 먼저 세상에서 보기를 원하는 변화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나에게 뭔가를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는 게 먼저다. 받을 자격을 먼저 갖추고 기다리면 그것은 언젠가는 찾아온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면, 내가 먼저 주변 사람들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라. 잘 웃는 사람을 주변에 두고 싶다면, 내가 먼저 뭐든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꼬투리 잡는 습관은 없는지 되돌아보라. 욕하는 사람이 싫다면, 나는 혼잣말이나 속으로라도 남을 욕하거나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라. 모든 건 내 마음이 자아내는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을 탓하기 전에 계속해서 내 안에 남은 찌꺼기나 잔여물은 없는지 살펴보라.


나 스스로를, 내 주변 환경을 내 힘으로 먼저 바꾸고 가꾸어 나가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또는 기운의 양상이 바뀐다. 그것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그에 걸맞은 사람과 사건과 환경들이 재배치가 된다. 그 기운에 맞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생겨나고, 맞지 않는 인연들은 절로 정리가 된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건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그 모습을 굳건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변화에는 딱딱하게 굳어있던 기존의 해묵은 습관과 관점을 벗겨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나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만의 가야 할 길이 따로 놓여있을 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도 처음엔 운전하면서 앞차가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출발을 늦게 하면 어김없이 빵빵대던 사람이었다. 나도 그렇게 당해왔으니까(?). 하지만 그 순환의 고리를 끊을 선택권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음을 명심하자.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자유, 그럴 권한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것, 그게 노예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을 사는 태도다.


내가 바뀌면 주변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것이다. 


명심하자,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실제로 울릴 일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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