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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Nov 02. 2023

조언, 왜 하세요?

알고 보면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욕구

유튜브를 보다가 '와우'를 외치게 만드는 영상이 있다. 이 좋은 걸 나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 연인, 가족, 친구 등에게 열심히 공유를 한다. 웬걸, 그들의 반응이 시원찮다. 이런 리액션을 기대한 게 아닌데. 시큰둥한 반응이거나 나중에 보겠다며 아예 클릭조차 안 해보는 상대를 보면 어쩐지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줘도 못 먹냐'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오는 것을 겨우 눌러 삼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 어딘가 익숙하다. 그 상황 속에선 나와 상대의 입장이 사뭇 달랐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좋은 글이나 사기/보이스 피싱/가짜 뉴스 주의보 등을 가족, 친지 등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열심히 공유하시는 아버지. 당신의 공유 행위에도 분명 '좋은 의도'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정작 나는 아버지가 나눠주시는 글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던가.


언젠가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진 사람 몇몇이 모여서 '창조성 증진 모임'을 만들고자 했던 적이 있다. 그때 그 모임의 리더였던 R은 그 모임을 구상하면서 각자가 만들고자 하는 창작의 여정을 '현실의 벽' 앞에 타협하지 않도록, 서로 독려하고 이끌어 주는 분위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창조성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에게 온전히 경제적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입장 차이가 발생했다. 당장에 수익화가 되지 않을 경우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를, R은 거슬려하는 듯했다. 


하루는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꼭 잘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만들고자 하는 것에 올인하는 태도의 긍지에 대해 설파했다. 당장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전혀 무관한 곳에 기웃거리는 것을 경계했다. 나와 같이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고 내세울 줄 모르는 또 다른 한 사람을 인도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나도 달라진 그 사람의 모습을 참고해 볼 것을 권했다. 조언을 해준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 진심이 온전히 내게 전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 조언이 나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조언 안에 서린 그의 욕구를 헤아려 보았다. 그것은 나의 '방황(그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나의 상황)'이 끝나길 바라는 연민의 마음이라기보다는, R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직 본인의 삶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였진 않았을까. 자기 삶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남의 삶에서 보이는 불확실성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확신의 여부를 떠나서도 자신의 삶에 완전히 집중한 상태인 사람은 타인의 삶의 양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남의 삶에서 보이는 불확실성은 신경 쓰지 않는다 ⓒ 휘도 판 데어 베르베 'No.8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나에게서 권해준 대로 해보았다는 반응 같은 것이 없어서였을까. 이제 막 태동을 하려 하던 그 모임은 R의 갑작스러운 선언으로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혹시 나의 입장이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 세계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판을 엎은 것일까? 자신이 현재 그리는 삶의 양상에 부합하는 존재들을 곁에 두고 싶은데 그런 모습에서 내가 벗어나는 게 싫었던 걸까. 나의 억측이길 바란다. 그의 심경의 변화에 대해 내가 따로 질문을 통해 확인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오롯이 나의 추측에 의거한 판단에 불과하다.


아버지 그리고 R과의 일화에서 느낀 게 하나 있다. 우리 각자는 각자만의 세계 안에 산다는 것이다. 똑같은 정보를 접해도, 설령 그게 나에겐 영감이나 감동을 던져준 것이라고 해도 상대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내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상대에게도 맛있어야 하는 법은 없는 것처럼. 


그런데 왜 나는 콘텐츠를 공유하면서는 실망감을 느낀 걸까? 누군가에게 뭔가를 건네면서 자신이 기대한 반응이 아닐 때 실망감이 든다면 그건 의식의 초점이 상대의 안녕이 아니라 자기 자존감이나 효능감의 충족에 있었다는 반증인 셈이다. 자기 조언이 반영되지 않았을 때 좌절감, 심하면 분노에까지 휩싸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양상은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형태일지 몰라도 실상은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반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지 되물어 봐야 한다. 나와는 다른 엄연히 독립된 자유로운 주체자로 보고 있는지 말이다. 주변 사람이나 환경 때문에 자신이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이나 주변 환경이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언제나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하겠다. 세상을 나의 입맛대로만 주무를 수 있는 찰흙 정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사람들의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정작 본인은 타인의 간섭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공유를 하면서 서운함을 느꼈던 내가 타인의 조언에는 불편함을 느꼈듯이. 내로남불은 독이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남들에게 먼저 그걸 주고, 내가 싫어하는 게 있다면 남들도 똑같이 그걸 싫어할 거라 생각해야겠다. 여기서 실제로 그러한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자기 내면에 모순과 이기심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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