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단남 Dec 11. 2023

癸卯년 甲子월 첫 번째 기록

[주간단남] 12월 1주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3.12.04 (월)


(..)

날씨는 맑음이라 적었지만 동이 트기 전 모닝 페이지는 오랜만이라 날씨가 어떤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얼마 만의 모닝페이지인가. 11월 계해월의 냉험한 물의 기운에 나는 무너지기로 선택해버렸다. 무너져버렸다는 피동적인 표현이 습관처럼 먼저 떠올랐으나 의식적으로 고쳐 썼다.


악순환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우선 자신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우리는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깊게 빠져 익숙해져 버린 그 패턴을 부수기 위해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그게 상황적으로 낯설고 어이가 없을수록(?) 괜찮다.


(..)

인생에서 흑자를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장사를 해도 비용보다 매출이 높아야 하고, 가계부를 써도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크도록 해야 한다. 비단 돈뿐일까. 어떠한 경험을 하든 적자보다 흑자가 나야 한다. 돈은 내가 오롯이 통제하기에는 변수가 많다. 누구나 늘 흑자를 낼 순 없다. 누구나 주식 투자의 달인이 될 수는 없다. 주식 시장에 비해 외부 환경의 변수가 적은 가계부 역시 마이너스가 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험만큼은 적자냐 흑자냐의 결정권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 모든 경험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좋은 경험도 다른 관점에선 좋지 않을 수 있고, 나쁜 경험이 반대로 좋을 수도 있다. 그것은 오직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사실'에 달렸다. 그것이 '사실'인 이유는 그렇게 믿으면 실제로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고, '주관적'인 이유는 개인의 마음먹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정적인 부문에서 흑자를 남기는 것보다도 경험에서 늘 흑자를 낼 줄 아는 사람이 종국엔 더 행복하고 재정적으로도 더 큰 부를 일궈내지 않을까. 나는 그것을 몸소 경험하며 증명하는 여정 위에 있다.


(..)

간만에 모닝 페이지를 쓰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잔뜩 쌓여있는 것이 느껴진다. 생각이 쌓이고 배출이 잘되지 않으면 사람은 행동력이 느려지고 게을러진다. 게을러지니 더욱 생각을 배출할 시도들이 줄어들고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

머리카락에 불이 붙는 꿈을 꿨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불씨가 나의 긴 머리카락에 옮겨붙은 것이다. 나는 당황스러워하는 한편, 겉으로는 차분하게 '여기에 누가 물 좀 뿌려줘.'라고 말했고, 누군가가 물인지 소주인지 뭔가를 뿌려주니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잦아드나 싶더니 이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맞춰둔 알람이 울리며 나를 잠에서 깨웠다.


꿈속의 불은 내게 이제 그만 일어나라는 각성의 요구를 하는 듯했다. 비단 간밤의 잠으로부터의 깨어남뿐 아니라 요 며칠 잠시 펑크 난 타이어처럼 퍼져있던 몸과 마음으로부터의 각성을 말이다. 불꽃은 혁명이고 직관이며 계몽의 상징이다. 칠흑 같던 어둠을 밝히는 횃불과도 같은 빛을 발산하며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올해 마지막 12월은 갑자(甲子) 월이다. 자월에는 가장 춥기도 하지만 그 깊은 추위의 심장부에서부터 '양기'가 생성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미리부터 생각하는 것은 비단 문화적 소산만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그냥 경자월도 아니고 무자월도 아니고 갑자월이다. 갑자는 60갑자의 가장 첫 번째에 오는 간지로서 새로운 시작의 기운이 강하다.


아마 이번 12월은 많은 이들이 새로운 시도를 곧바로 행동에 옮기거나 계획하고 마음먹게 될 것이다. 기존에 오래 해오던 것을 과감하게 그만 두기도 할 테다. 사실상 2024년 새해의 애피타이저가 벌써부터 서빙된 셈이다.


(..)

변비에서 해방된 듯 개운한 느낌이 든다. 바깥을 보니 이제 제법 세상도 비로소 그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볼 수 있다는 것,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감각기관이 있다는 것은 실로 신비롭고도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3.12.06 (수)


(..)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것으로 같이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 무거운 침묵이 아니라 포근한 침묵.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고요함 속에서 각자의 펜과 종이가 만들어 내는 기분 좋은 마찰음만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 순간엔 평화가 감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오롯이 이 종이 위로 흘러들어온다. 미처 포착되지 못한 생각들은 인지의 그물망을 벗어나 저기 저편, 망각의 바다로 흘러간다.


(..)

몰입의 상태는 그만큼 인지의 범위가 순간적, 일시적으로 좁아지고 대신 그 깊이는 매우 깊어져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상태가 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둘이서 같이 모닝 페이지를 쓰고 있노라면 각자에게서 나오는 몰입의 기운이 서로 공명하여 더욱 시너지가 커진다. 이 공간 안이 그런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만 같다.


(..)

어제 다녀온 타로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일단 그런 파티를 하는 분위기가 얼마 만인지. 새롭고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그들만의 파티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동떨어진 외부인이었기 때문에 소속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지만 씁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감정은 내가 저들 중 한 명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보게 만들었다. 또 다른 평행우주 속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것이다. 그쪽의 '나' 역시도 나름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런 지점에서 갈라져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인생이란 게 참 한 치 앞을 섣불리 단정 짓고 예상할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같은 현상을 해석하는 무수히 많은 방식이 존재하고 그 해석의 방식에 따라 선택의 결과도 달라진다. 다른 선택은 다른 양상의 삶을 만들어 낸다. 내 삶에 내가 책임을 진다는 건 이런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보다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반응은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에 가깝다.


프로그래밍된 대로 자동 반응하며 살아가는 대신, 매 순간 의식적인 선택을 내리며 선택의 결과로 새롭게 뻗어나간 경험의 가지가 또 나를 어떤 곳으로 데리고 갈지 기대하며 사는 것이다. 인생이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하여 펼쳐지는 여정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어쩌면 본질은 여정에 있고, 목표라는 것은 여정을 만들어 내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주역의 가장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는 인생에 완전한 끝과 완성은 없으며 영원한 순환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환성은 직진성, 그러니까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며 그 여정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며 앞으로 나아갈 때 일어날 수 있다. 원형 운동은 직선운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인생은 시지프스처럼 사는 것이다!

근데, 이제 거기에다가 조금은 긍정성을 더하거나, '그까짓 거 뭐 그냥 하는 거지 뭐 있어?' 하는 식의 스피릿을 더하는 더해서 말이다.




23.12.07 (목)


(..)

선잠을 잤다. 잠에 들긴 했는데 어딘가 깨어있는 기분. 잠든 나를 내가 인지하는 것 같은 기분. 분명 나는 잠에 들었는데 왜 자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느껴졌을까.


(..)

어제 특별히 야식이나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배가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는 것 같아서 잠시 왼쪽 합곡에 침을 좀 놓고 와야겠다. 으.. 미미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이 날카로운 금속성의 감각은 정말이지.... '싫다'라고 방금 라벨링을 할 뻔했지만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흘려보냈다. 


(..)

바야흐로 대 미디어의 시대다. 유튜브를 넘어 이젠 틱톡, 릴스로 대표되는 '숏폼'같은 토막토막의 영상이 주를 이룬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면 내가 클릭하지 않아도 온갖 동영상들이 재생되며 노량진 수산시장의 상인들처럼 나를 유혹한다. 정보들이 소설 <해리포터> 세계관 속의 신문 속 움직이는 사진처럼 문자 그대로 넘실거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스마트폰 속 앨범에서는 동영상이나 움직이는 사진이 있어도 그렇게 여기저기서 자동 재생이 남발되지 않는다. 이용자가 앨범을 보며 보내는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것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전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만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게 돈이 되는 것이 우선이고 그 안에서 소비자가 무엇을 좋아할지를 고민하는 것일 따름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 우린 공급자가 제시한 선택지 내에서만 '제한적인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그 선택지들 간에도 교묘히 적용된 설계에 따라 공급자가 의도한 선택을 내리기 일쑤다. 


구태여 갑과 을을 나눈다면 사실상 소비자가 을이다. 겉으로는 갑 대접을 기분 좋게 해주지만 말이다. 그러니 갑 대접을 해준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23.12.09 (토)


(..)

짝꿍을 외롭게 하긴 싫지만 그렇다고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 어딘가 중간 지점에서 적당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같이 동업을 해서 사회적 활동도 같이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동반자와 함께 지지고 볶으면서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짝꿍이 언젠가 해보고 싶다던 소품샵을 떠올려 본다. 그 안에 내가 담당하는 상담소를 샵인샵 형태로 병행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흥미 있는 것과 짝꿍이 흥미 있는 것 그 사이에 분명히 교집합은 존재할 테다.


(..)

2023년은 합을 이뤄서 안정되면서도 지루하기도, 지지부진한 한 해였다면 내게 다가올 2024년은 한껏 그 변화의 양상이 강력해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나의 짝꿍 역시 대운이 바뀌니 변화무쌍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역시 대운과 세운이 합을 하여 변화를 가져온다. 원국의 충도 잦아드니 정신적으로는 더 편안한 시기이며, 공부도 하고 나가서 일도 하기 좋은 시기가 될 것이다. 둘이서 올해 재미난 일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세부적인 방향성이 일치할지는 의문이지만.






[주간단남] 속 알짜배기 사색만 모았다!

브런치북 보러가기



간단남 응원하기

작은 관심과 응원만으로도 지속해 나가는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록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 최초의 모닝 페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