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단남 Feb 25. 2024

다 안다는 듯 말하지 않기

아 이거라는 거네/ 딱 보니 그거네/ etc


만일 누군가 어떤 주장의 근거를 보지도 않고 주장의 내용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며 자신이 접한 정보를 근거로써 내놓기만 한다면? 양극화의 시작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인간이 어떤 정보를 습득하고 받아들이는 배경과 상황 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게 첫째 이유다.


그러니 상대방의 주장의 근거는 들어보지도 않고 자신이 본 것을 들이민다.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어봐서 아는데 상대의 수준도 자신과 비슷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은 자신이 더 앞서있다 여기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레 두 번째 이유로 이어진다. 자신이 믿는 정보가 최신 정보고, 너무나 옳은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는 이것을 틀림없이 모를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의 근거는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근거를 역으로 들이밀 수 있는 것이다. 한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살펴보면 이 얼마나 무례하고도 무식한 행위인지 알 수 있다.


자기 확신은 지나치면 안 된다. 믿음은 갖되 맹신까지 하지 않는 게 건강하다. 믿음에는 근거가 필요하지만 강한 확신에는 근거가 꼭 필요하진 않다. 확신은 어쩌면 그저 선택의 문제다. 이유가 있어서든, 아니면 그냥 그게 옳다고 직관적으로 느낌이 와서든, 확신하기로 결정이 되면 일단 확신이 드는 것이다. 믿음과 확신이 더해지면 그건 신념이 된다.


신념은 나를 이끄는 힘이 되어야지, 상대를 배척하기 위해 그 기능을 발휘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으로 사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양극화의 우를 범하면 국가나 사회 등의 법과 규칙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다. 악랄한 지배자에게 '우매한 대중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쥐어줄 개개인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


상담에 임할 때도 내담자의 말을 대충 넘겨 짚고 자신이 이때껏 겪어온 어떤 '패턴'에 끼워맞추려고 하면 안 된다. 선입견과 패턴화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상담자를 이끌기 쉽다. 이건 상담이 아니라 재단이고 판단이다. 상담자는 의사와 같이 진단이나 결론을 내려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걸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렇기에 상담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배우고 생각하고 성장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대중의 일원으로서, 우리 모두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모두가 더 살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과 타협의 길 끝에 놓인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