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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pr 08. 2024

甲辰年 戊辰月 첫 번째 기록

[주간단남] 4월 1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4.04.02 (화) 


(..)

기(氣)는 달리 말하면 우리가 내뿜는 파장이요, 그것엔 저마다의 주파수가 있다. 만물은 진동하는 미립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현재 진동수는 일시적으로 낮은 상태를 지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이건 누군가의 말마따나 내 원천 진동수가 낮아진 게 아니라, 일시적인 내려감의 패턴일 뿐이며, 평온한 상태일 때 배우고 깨닫고 익힌 것을 실전에서 써먹어 보게끔 펼쳐지는 것일 따름이다.


뭐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하고 적을 것도 없이, 모든 경험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진동을 높이는 길이다. 그리고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것. 그리고 가급적 내 영혼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 '지복'이란 무한하고 그칠 줄 모르는 행복에 가깝다기보다는 고요와 평화에 가까울 것 같다. 그것은 파도 위에 올라타 그 흐름에 온전히 몸을 맡기는 마음이다. 파도가 거칠 든 잔잔하든 간에.


(..)

파도타기가 순항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 멀리서 어떤 파도가 오는지 미리 보고 패턴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혹은 어떤 파도가 순간적으로 닥쳐도 다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전자는 우주의 이치를 구하고자 하는 배움과 노력 속에서, 후자는 개인적인 수양 속에서 갖춰진다. 삶에서 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두 가지 영역에서의 배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각자의 운명이 정해둔 것에 맞춰서 말이다.





24.04.04 (목)


(..)

타인의 삶에 관여한다는 책임감. 이 업계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수도 없이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치열한 고민을 해본 사람만이 남의 고민을 들을 자격을 얻는다. 감히 당사자의 고통을 헤아린다고는 못해도 고통의 경험의 유무는 한 개인이 직면한 문제의 크기를 과소 또는 과대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만든다.

고통의 경험이 없다면 계속 수행의 길을 걸어야 한다. 수행도 고통의 일환이다. 내가 깨달은 만큼만 나는 타인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몸소 체득한 원리가 아니고서야 누군가에게 길의 방향을 일러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몸이 한 개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 그들의 이야기, 삶의 고민, 목표, 행복 등에 대해 가슴과 두 귀를 활짝 열고 사는 삶이 나를 더 성장케 할 것이다. 

듣기 위해 태어난 삶. 어쩌면 훗날 내 아호를 짓는다면 '볼 관觀' 자를 써서 지어야 하지 않을까. 주역 괘에도 관의 이름을 지닌 풍지관 괘가 등장한다. 견디어라. 이런 책임감이 결국 나를 더 성장하게 한다. 계속된 성장만이 내가 삶에서 취하고자 할 바인 따름이다.

(..)

뜬금없는 소리지만 에어 프라이어의 존재가 신기하다. 전자레인지와 오븐의 중간점에 어느 순간 나타나서 삶의 필수 영역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하여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 사례들에 대한 연구도 많은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공부는 호기심이 이끈다. 모든 것은 흥미와 재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안정감이, 사회적 기반이든 안정적인 직장이든, 지속성을 담보한다. 재미와 같은 감정은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하기로 한 건 해본다는 의지의 작용도 있으면 좋다. 감정과 이성은 서로가 반대되는 존재가 아니라 음양과 같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고통과 책임도 성장과 결실을 동반하듯.




24.04.05 (금)


(..)

꾸준히 나의 향기를 발산하다 보면 어떻게든 어딘가에는 닿는 법이구나. 이어질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지고 일어날 일들도 다 마찬가지다. 세상만사엔 다 이유가 있고 역할과 목적이 있다. 내가 그것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과학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마 지금도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의 지각 능력으로는 그렇게 밖에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나아가 내가 배우고 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언제나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경험과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자기개발 중독이나 성장 강박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삶 자체가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 

돈을 내고 책을 사고 강의를 들어야만 뭔가를 배우는 게 아니다. 진짜 배움과 그로 인한 성장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경험을 복기하며 곱씹는 과정에서 마치 음식을 소화하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에 양분을 축적한다.




24.04.06 (토)


(..)

어떠한 내용을 건져내야만 모닝 페이지를 쓰는 시간이 의미 있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는 영감을 얻는 창고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장소도 아니다. 그냥 대장에 배설물이 쌓이면 배출하는 게 자연스럽듯 생각의 고임이 일어나지 않도록 순환시키는 것일 따름이다. 그에 따른 긍정적, 부정적 효과들은 모두 '관점'에 따른 해석의 결과물이다. 

언제나 실재하는 것은 현상과 존재 그 자체이고 다른 것은 모두 해석이다. 우린 실체가 아니라 해석이 만드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체를 직접 창조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석은 가능하다. 고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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