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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y 13. 2024

甲辰年 己巳月 두 번째 기록

[주간단남] 5월 2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4.05.07 (화) 


(..)

어느 하나의 철학 사조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한 것, 아니 특정 철학자의 사상을 깊이 판 자와 철학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꿰뚫고 있는 자 중 누가 더 진리에 가까운 답을 구해내겠는가?

답은 자신이 믿는 그것만이 진리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요, 자신이 좇는 그 경지를 몸소 체험해 본 자다.

지식의 늪에 빠진 자는 그것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 모른다.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지식 놀음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훈련과 반복 숙달은 자신이 몸담은 영역이 어디든 변하지 않을 미덕이요 필수 요강과도 같다.

(..)

정말이지 이쪽(?) 공부엔 끝이 없어서 때론 막막하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벅찰 때도 있다. 지금에 와서야 통합이니 통섭이니 하고들 있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우리 선조들에겐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게 동양철학 아닌가. 송곳처럼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어 그것의 쓰임새가 분명한 것이 서양세계의 결과물이라면 동양의 그것은 마치 '정'이나 여타 다용도의 도구처럼 쓰임새가 특정되지 않으면서도 두루두루 쓰이는 듯하다.




24.05.09 (목)


(..)

잘 파는 사람이 뜨는 게 현대사회다. 구체적으로는 장사, 무역, 보부상부터 시작해 넓게는 영업, 마케팅, 브랜딩.. 하다못해 아내에게 술 약속 허락을 잘 받아내는 남편까지. 잘 판다는 것에 담긴 의미는 실로 다양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시대의 흐름이나 타인과 세상의 필요를 잘 읽어내는 능력, 이재에 밝은 능력, 부지런함은 말해 무엇하랴. 잘 파는 사람들이 지닌 능력은 시대적 덕목이 되어 많은 이들이 고전, 철학, 종교의 가르침보다도 칭송하는 가치가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넓고도 긴 인류 역사의 흐름 위에서 보면 고정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한시적 가치일지도 모른다. 잘 파는 능력이 중요한 건 그것이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배금주의, 온라인 세상, 글로벌 사회, 수요보다 넘치는 공급 등.. 마침 잘 파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 왔고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앞으로 치고 나아가게 되었을 뿐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런 시류에 편승하려고 애쓰는 건 어딘지 현명한 처사로 보이지는 않는다.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른데 늘 세상은 '시대에 부응하는', '니즈에 주목하라'라고 외친다. 그래야 돈이 되고, 그래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니까.

아마 지금이 사색의 시대이고 물질보다 정신의 가치가 더 추앙받는 시대였다면 잘 파는 능력보다 침잠하는 능력, 홀로 고요히 지낼 줄 아는 능력, 자극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능력 등이 추앙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런 자질들을 가진 사람들이 절로 빛을 발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뱁새들은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뱁새는 뱁새대로, 황새는 황새대로 사는 게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며, 가장 이상적이다. 우리는 시대의 부름에 응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법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아무도 읽지도 않고 뭐라는지도 모르겠는 글만 올리지 말고 남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걸 좀 올려보라는 한 소리를 들었다. 네가 유명해져야 똥을 싸도 사람들이 읽는 것이니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먼저 유명해질 생각부터 하라고. 나도 안다. 사람들은 글이 아니라 작가를 읽는다는걸. 

브랜드 표기 금지법, 저자 표기 금지법 같은 게 만약 생겨난다면,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도 함께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다. 자신은 브랜드 때문이 아니라 제품력 때문에 물건을 사고, 작가가 아니라 내용물이 좋아서 선택할 뿐이라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자신이 사랑하는(줄로만 알았던) 대상을 사실하고 엄청난 인파 속에서 미아를 찾는 간절한 부모처럼 범람하는 공급 속에서 자신의 "소비 정체성"을 빛내주던 상표의 원물을 애타게 찾아 헤맬 것이다.

(..)

나는 남들'도' 보라고 올리는 것이지, 남들이 제발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게 아니다. 이건 나를 위한 행위다. 주간 단남도 아무도 내게 쓰라고 강요하거나 애원하지 않지만 마치 내가 멋대로 상정한 독자의 존재를 떠올리며 일종의 강제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내 끄적임, 나의 뇌까림을 읽어주고 응원을 보내주면 기분은 당연히 좋다. 이는, 패션 코디와 관련된 부동의 논쟁거리인 <남 보여주려고 입는다 vs 자기만족을 위해 입는다>에 적용시켜 설명할 수 있다. 그 둘은 사실 배타적 선택지가 아니라 양립 가능한 선택지다.

자기만족을 위해 입지만 타인이 알아봐 주면 덤으로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경우가 있고, 타인에게 칭찬 하나라도 더 듣고 와야만 그날 코디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데, 칭찬을 받으면 그런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자기만족이 덤으로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결국 무엇에 방점을 찍고 무엇을 덤으로 두느냐의 차이일 뿐, 누구나 저 두 가지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나 자신과 타인을 분리할 수 없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순도 99%의 자기만족이 이유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도 만족의 근거가 어떤 패션의 기준이라면, 그 기준은 과연 누가 세웠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게 아니라면 (그것을 과연 태교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나?) 반드시 타인의 기준, 세간의 취향 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는 것이다.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남들이 날 이렇게 멋진 놈으로 보겠지?라는 자기 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여기서 실제 그 여부는 중요치 않다.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내면화한 어떤 기준을 자신이 지켰기 때문에 스스로를 그런 멋진/우아한 사람으로 굳건하게 보기에 자기만족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그 기준을 따랐느냐 그렇지 않았냐만 따지기에 타인의 실질적인 시선이나 반응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그게 자기만족의 실체다. 세상에 애초에 그런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없고 한 개인만 홀로 존재한다면 '자기만족'이라 일컫는 그 감정을 결코 느낄 수가 없다.



24.05.10 (금)


(..)

바쁘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누구에게나 하루에 짬으로 낼 수 있는 시간은 반드시 있다. 시간을 좀먹는 존재들이 있기에 시간이 없다 여길 뿐. 정신없다, 바쁘다, 시간이 왜 이렇게 부족하고 빨리 가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매 순간에 얼마나 충실하게 머물렀는지, 그리고 의도하지 않는 방식,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낸 '잠든 시간'이 과연 없는지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현대인의 경우 대부분은 스마트폰이 원흉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재미없고 따분한 상태로 머무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 불만족을 그저 그대로 내버려두면 실제로는 그게 불만족이 아니라 평화였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평화는, 행복은 어떤 조건이나 상태와 결부된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쾌락도 불안도 아니다.

모닝 페이지를 쓰기 직전까지는 그렇게 귀찮다가도 막상 쓰기 시작한 지금은 그저 평안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펜에 붙들리는 생각을 종이에 적어나갈 따름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문득 감사할 것들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아직 건재한 내 몸이, 그런 심신을 돌볼 기술과 이론에 꾸준히 관심이 생겨나는 것에, 그리고 오늘도 또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게 하루가 주어진 것에 대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미소를 담아 감사의 에너지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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