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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y 06. 2024

甲辰年 己巳月 첫 번째 기록

[주간단남] 5월 1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4.05.01 (수) 


(..)

이제는 쌀쌀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부는 와중에도 훈기를 느낀다. 봄 뒤에 다가올 여름의 기운을 한껏 품은 바람이다. 신기하다. 분명 반팔만 입기엔 쌀쌀한 바람이 맞는데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 신묘함을, 마치 그라데이션 색처럼, 물감이 물속에 떨어지면 번져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변화의 기운을 표현한 것이 명리학에서 말하는 지장간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우리는 연속적인 변화의 흐름 위에 늘 놓여있다. 현재라는 순간만이 무수히 겹치고 겹쳐져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같은 1초 전이라고 해도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같은 강물에 계속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은 비단 철학적 담론에만 국한될 주제가 아니다.

(..)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나의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돈을 버는 일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고객이든 아니면 자기 스스로든.

(..)

채근과 압박 없이 대상의 행보를 그저 응원하며 지켜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사랑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인이 지니지 않은 것은 줄 수가 없다. 다만 그래 보이는 것으로 포장할 따름이다. 안에 질투를 품은 이는 질투로, 불안하다면 불안으로, 걱정은 걱정으로, 혐오는 혐오로.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결핍을 주변에 투사하며 살아간다. 반면에 내가 나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면 세상도 역시 사랑으로 화답한다. 

(..)

요즘 단월드가 이슈던데. 영성과 사이비는 한 끗 차이다. 여론도 늘 옳을 수 없다. 대세가 아니라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자. 여러모로 참 다사다난한 갑진년이다.




24.05.02 (목)


(..)

새삼 느끼지만 운은 어떤 사건을 유발하는 독립변수라기보다는 개연성을 높여주는 환경이나 무대 장치 같은 듯하다. 모두가 폭염 속에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짜증을 내지는 않듯이 말이다. 운의 흐름이 어떠하다고 해서 모든 원인을 운명의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란 말이다.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내가 아니라 남에게서 찾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

옳고 그름과 마땅함에 대한 인지가 순전히 이해관계자가 본인이 될 때에만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역시 올바름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화법과 언행을 지니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애당초 상대에 대한 존중을 평소에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언행은 단지 그 사람의 속마음이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창구 역할을 할 뿐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결국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듣보', 'ㅈ소' 등으로 폄하하는 것은 다른 걸 다 떠나서 그곳에 다니는 자신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격이 낮은 사람의 발언에 대한 신뢰도도 그에 따라 같이 낮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자기 사랑이 있는 사람이 남 소중한 것을 안다.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애초에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내로남불을 귀엽게 웃어넘길 줄 알아야, 그리고 그 모순이 공적이고 중요한 사안에서 발생한다면 흥분하지 않고 분명하고 차분하게 지적할 줄 알아야 그게 대인배이고 군자다. 군자는 그저 옳음을 지향할 뿐이다. 상대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라. 

(..)

가급적 시작은 어렵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환경과 상황에서 사람은 본인의 그릇과 됨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다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그런 굳센 믿음.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조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믿으라, 그러면 구할지어니. 

마음이 복잡할수록 결국 길은 나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스스로 군자가 되는 것. 현재의 자기 자신이 제아무리 소인배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걷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외부에 시선을 뺏기지 말자. 어차피 모두 내게서 비롯되는 것들 아니더냐.




24.05.03 (금)


(..)

글이 매우 잘 쓰였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초반에는 그렇게 품질을 평가하는 시선이 작동했다. 잘 읽히는지, 전개가 매끄러운지, 생각의 결이 신선하거나 날카로운지 등등. 뭐 체계적으로 정립된 나만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순전히 감과 느낌이지 뭐. 고상하게 표현할 게 아니다. 그건 단지 취향이나 입맛일 따름이다. 모두가 고작 그것으로 남의 과업을 함부로 진단한다. 그것이 때로는 자라나는 잠재력이라는 씨앗을 발아하지도 못하게 짓밟는지도 모르고 함부로 '안목'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도 나는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결국 끝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저자와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지만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글을 통해 저자라는 한 개인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점점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일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저자를 응원하고 싶고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이것이 저자의 글이 지닌 그만의 개성 탓일까, 혹은 책이라는, 그것도 개인이 출판한 독립출판물이 갖는 특성 탓일까. 만일 개성에서 매력이 발생한다면 더더욱 시중에 잘 쓴 글이라며 알맹이보다 껍데기를 강조하는 그런 방법론에 매몰될 필요도,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 서적의 특성 때문이라면 앞으로 또 한 권의 책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지 기반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가 독립출판물일 수 있는 것이다.

(..)

자식을 자랑품이나 트로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부모로서 자식 자랑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마음 아닐까. 그리고 걱정이 되실 수밖에 없기도 할 테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에게 휘둘려선 안 된다. 언제나 생각과 행동의 주체는 삶을 직접 살아가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경청하고 그 뜻을 헤아려보려는 것과 두 눈과 귀를 닫고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인간에게 눈과 귀가 2개씩인 이유는 그만큼 다양한 것을 두루 보고, 더 많이 들으라는 겸양의 덕을 쌓으라는 것이리라. 

내 멋대로 만들어낸 상대에 대한 판단과 분석으로 하나의 가상의 형상을 세워놓고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단편일뿐더러 주관적이고 왜곡된 시선이니까. 그 대신 그저 그 순간에, 긍정적 감정이 들든 부정적 감정이 들든, 머물러 보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아닌가.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그렇게 언짢을 일도, 걱정할 일도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언제나 현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쁘지 않다.


24.05.04 (토)


(..)

왜 이 세상 사람들은 결과가 없으면 과정도 없다고, 혹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삶에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사람은, 결과가 없으니 그 과정인 '인생' 자체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일까? 과정도 결과도 모두 중요하다. 나는 과정주의자도, 결과주의자도 아니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시대에 팽배한 결과주의에 반하여 과정주의자의 포지션을 취할 뿐이다.

(..)

그것을 내가 너무 무겁게 해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속 좁게 말하는 이의 내로남불을 들이밀며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절한 말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세상은 결국엔 혼자서 헤쳐나가야 하는 무대다. 언젠가는 누구나 홀로 그것을 직면해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형태와 상황과 시점은 저마다 상이하겠지만 말이다. 그럴 때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오늘도 새로이 뜬 태양을 보며 하루를 또 시작해야겠지. 그래 이것 또한 다 과정일 거야.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삶의 궤적이 맞춰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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