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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y 23. 2024

마음이 합니다

현ㄷ해상.. 아니, 줌손 깍짓손보다 중요한 것

정중동, 동중정(靜中動, 動中靜).


멈춰있는 듯하나 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움직이는 듯하나 실은 멈춰있는 상태.


활쏘기를 하면 저 표현에 담긴 모순적 이치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과녁을 향해 활을 가득 당긴 상태를 만작 또는 온작이라고 하며, 손에서 시위를 놓아 화살을 날려 보내는 것을 발시라고 한다. 만작과 발시 사이의 찰나와도 같이 짧은 시간 속에 정중동, 동중정의 이치가 녹아있다.


활을 가득 당긴 상태는 정지 상태처럼 보이나, 실은 계속해서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이 정(靜)의 상태는 나의 활 스승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기와 지기가 불거름(단전)에서 만나 합일을 이루는 순간이 펼쳐진다. 나는 이것을 '지복의 상태'라고 부르고 싶다.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의 팽팽한 '정'의 균형은 어느 순간 자연스레 무너지며 '동'의 순간으로 전환된다. 그것이 발시다. 만작을 하고 정지했다가 제자리에서 손만 놓는 것이 아니라 '정'의 상태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가운데서 계속해서 더 당기고, 그만큼 반작용에 의해 더 밀며 버티다 보면 어느샌가 자연스레 힘의 균형이 양쪽으로 분할되며 ‘동'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만작의 그 순간은 정이기도, 동이기도 하다. 들숨이 극에 달하면 자연스레 날숨이 터져나오는 것과 같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나오고, 달이 차면 기울며, 만남은 헤어짐을,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낳는다. 삶은 곧 죽음으로, 죽음은 또 다른 삶을 낳는다.






문제는 정작 나 자신은 저 지복의 상태를 통 겪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활을 가득히 당겨 온몸에 기운이 가득 찬, 조화로운 상태에 채 진입하기도 전에 혹은 충분히 머물지도 못한 채 시위를 놓아버리고 만다. 충분히 기다렸다가 쏘는 '지사'가 아니라, 빠르게 쏴버리는 '속사'가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다.


속사의 가장 큰 원인은 만작 도중에, 혹은 만작 이후에 이따금씩 화살이 '톡'하고 떨어져 버리는 '낙전' 현상이 여전한 데다가 원인을 특정할 수 없어서 예상이 어렵다는 것. 두 번째 원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3초를 세고 쏘라며 스스로를 채근하다 보니 조급함과 불안한 마음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원인 모를 낙전이 나의 활쏘기에 방해가 되는 점은, 우선 그것이 만작 중에 일어날 경우 활쏘기의 흐름을 끊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활을 들어 올려 가득 당긴 뒤 쏘아 보내는 그 일련의 과정은 마치 춤과 같이 물 흐르듯 연속된 동작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작이 다 된 후에 일어날 경우는 더 큰 문제인데, 발시 직전에 낙전이 일어나 버리면 부상의 위험이 있고, 화살이 과녁이 아닌 이상한 곳으로 가버릴 경우 과녁이 아닌 다른 곳을 맞혀버리는 사고의 위험이 있다.


낙전 이외의 원인은 역시나 과녁을 맞혀야 한다는 강박과 집착과도 같은 마음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결과에 대한 생각이 있다. 결과를 얻을 자신이 있어도 욕심이 생기고, 자신이 없다면 두려움과 집착하는 마음이 생긴다. 활도 예외는 아니다.


정중동은 단순히 멈춰있는 듯보이나 실은 움직이고 있다는 물리적 상태에만 국한되는 서술이 아니다.  정중동은 주변 환경과 외부의 자극에 상관없이 자기 의지대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경지를 의미한다. 여기에 사견을 덧붙이자면 이는 물아일체의 경지요, 완전한 몰입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극한 행복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에서는 이러한 지극한 몰입의 경지를 'The Zone'이라고 멋지게 표현하기도 했었다.


피아노 연주에 몰입 중인 주인공이 The Zone에 진입한 모습 ⓒ 영화 <소울>


한데, 나는 요즘 활시위를 가득 당길 때마다 낙전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그날그날의 기록에 따라 과녁(결과)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으로 속이 늘 시끄럽다. 마음이 불안과 조급함으로 뒤덮이니 차분하게 단전의 기운이 양손 끝까지 맺히기 위한 충분한 기다림도 없이 급하게 활시위를 놓아버리기 일쑤다.


정중동의 지복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 최소한 3초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3초를 기다리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스스로의 몸과 마음 하나 통제하지 못하냐는 책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괴로운 마음은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조급한 활쏘기를 낳으며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나게 됐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3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차분하고 느긋한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3초라는 기다림은 그런 묵직하고 안정된 마음이 표현된 결과물이 아니던가. 내 화살이 떨어질까 봐, 혹은 과녁에 맞지 않아서 주변의 부끄러움을 살까 봐 하는 혼란스럽고 탁한 생각에서는 차분하고 투명한 마음이 생겨나지 못한다. 마음을 비워내고 자세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며 고요한 마음을 세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3초도 못 기다려?' 하며 자책하는 대신 나를 믿자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3초든 2초든 그저 가득 당긴 그 상태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 차오르는 듯한 순간을 온전히 음미하며 그곳에 머물러 보라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태도를 바꾸자 느낌이 달라졌다. 1초든 2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그 지복의 순간에 머무는 그 느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정 기준의 달성의 유무에 따른 조건적, 선별적 수용이 아니라 만작과 발시의 정중동-동중정의 상태에 머무는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에 그치게 되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물론 그것이 내 활쏘기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진 못했다. 나는 여전히 이따금씩 두려움이 올라오고, 조바심이 올라온다. 내 화살에도 기운이 가득 실리기도 하지만, 맥없이 날다가 과녁에 닿지도 못하고 이내 고꾸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초점은 합격/불합격의 이분법적 사고로 스스로 세운 기준을 달성하는지의 여부에만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하던 것에서 매 순간의 동작의 흐름을 느끼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정중동과 동중정의 이치를 보다 잘 느끼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합니다'


H보험회사의 광고 카피 문구지만, 나는 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활은 줌손으로 내는 것도, 깍짓손으로 내는 것도 아니다. 활을 날려 보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하는 것이다.


활을 '잘' 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추측컨대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욕심을 버렸고, 공포를 버렸고, 미련을 버렸고, 불안을 버렸고, 초조를 버렸고, 고정관념을 버렸고, 흥분하지 않았다.


만화가이자 요 근래엔 <허영만의 백반기행>으로 더 유명한 듯보이는 허영만 선생이 주식에 대한 배움을 엮어낸 책에 나오는 한 인상 깊은 구절이다. 잘 맞는다고 흥분해서도, 안 맞는다고 낙담해서도 안 된다. 그저 텅 비워낸 마음으로 고요한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궁사의 마음가짐이리라.


나는 여전히 몰기(한 번 쏠 때 주어진 기본 화살 단위인 5발을 다 맞히는 것)를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주변에 몰기를 밥 먹듯이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거다. 한 사람의 경험은 그 사람이 지닌 세계관에 의해서 이뤄진다. 이 세상은 마음이 자아낸 현상들의 연속이다. <우파니샤드>, <반야심경> 등 고대의 경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쾌(Raga)도, 불쾌(Dvesa)도 아닌 순간을 즐기라고(Moha) 말한다 ⓒ 영화 <소울>


몰기가 당연한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몰기는 일상이 된다. 그 당연함은 자기 신뢰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낙전이 두려운 자의 세상은 낙전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고, 과녁에 못 맞히는 수치심을 걱정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러한 수치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며 과녁을 바라본다. 한가득 당겼다 잠시 머무르는 그 찰나의 순간이 제법 평화롭고 충분하게만 느껴진다. 속으로 3초를 세던 버릇은 조금씩 흐려진다. 어느덧 '팡-!'하고 줌손과 깍짓손의 균형이 풍선 터지듯 사라지면 화살이 하늘 위로 힘차게 솟아오른다. 하늘이 맑아서인지 비상하는 화살을 보는 내 입가에 화창한 미소가 지어진다.


 

가득 당긴 그 순간에 충분히 머물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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