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단남] 6월 1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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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더 좇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돈 이전에 생각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가치.
이것 또한 돈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뛰어든 것이지, 돈을 벌려고 이 일을 택한 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을 벌지 못해도 좋으니 사람들에게 삶을 더 거시적으로 볼 수 있도록, 아니 그전에 매일을 살아갈 용기든 이유든 그 어떠한 것이든 내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답이라는 틀 같은 게 아니라.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에너지를, 기운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식을 채우는 공부와 함께 영혼을 고양시키는 끝없는 자기 수양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고고한 척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내 상담의 원천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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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무슨 말로 정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UX'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본질은 누가 창조한 게 아니라 인간이 늘 해오던 방식이고 누군가 거기에 이름을 붙였을 따름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그가 최초였기에,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방식이었기에 회자가 되는 것이지, 모두가 그 전략을 모방하다 보면 세상은 복잡하고 시끄러워진다. 마치 지금의 세상처럼.
작금의 사회는 다양성을 넘어 복잡성의 엔트로피가 극에 달한 듯하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이러한 현상도 차츰 정리가 되는 흐름을 타지 않을까 예상한다. 온갖 용어로 범람하지만 알맹이는 정작 별게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도 그런 기조에 반기를 들기는커녕 외려 일조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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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그래도 습관처럼 야식과 혼맥을 선택하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 삶이 계속 변화하는 순간들의 연속인 것을 감안할 때 선택이야말로 그런 연속적 순간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을 고심하고 긴장을 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애초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의도만 분명히 품고 있다면 디테일은 그에 따라 알아서 잘 결정될 테니까. 내가 할 일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의도의 명확성을 이따금씩 점검할 일이다.
그리고 평정심. 이건 어떤 길을 가느냐에 관계없이 꼭 필요하다. 물에 빠져도 허우적대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해야 생존확률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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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정관이 들어왔으니 나 자신을 점검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요즘 자고 일어나면 눈에 졸음이 너무 가득하다. 간이 약해졌다는 신호일 텐데, 간경락에 침을 놓거나 마사지를 좀 해줘야겠다. 오늘은 기해일. 내게는 조후상 기신들이다. 오늘도 역마충이 들어왔으니 방안에만 가만히 있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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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으로 완두콩을 쪄서 먹는 건 별미인 것 같다. 그때그때 땅에서 나는 제철 재료들이 보약이다. 다른 게 보약이 아니라. 밍이 귀농 얘기를 꺼냈다. 봄생이 일지에 축토를 깔고 있으니 그래도 '밭' 정도는 되는 물상이려나. 을묘목이 튼튼하고 옆에서 유금 전지가위가 적당히 가지를 쳐주니 제법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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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푹 잤나? 아니 그렇지만도 않은 게 간밤에 꿈자리가 요란했던 게 떠올랐다. 사람보다 큰 핏불테이러 비스무리 생긴 종들에게 사람들이 쫓기는 꿈을 꿨고 나 역시 쫓기는 쪽, 정확히는 쫓길 차례(?)를 기다리던 꿈이었다. 잠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기억이 나길래 찾아보니 좋지 않은 얘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꿈 덕분인지 6:30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인 5시 50분에 눈이 떠졌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나? 일이야 뭐 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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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엑스퍼트 프로필 점검을 했다. 그와 관련된 생각이 툭,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너는 지금 너무 자원을 분산시키고 있어. 한곳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나의 검열관인 에고의 목소리.
결과를 보고 역으로 원인에 대해 운운하는 건 쉽다. 인간의 삶에 인과가 명확한 일은 몇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근거와 논리만 갖추면 그럴싸해 보이고 일견 타당성까지 갖춘 의견이 된다. 그게 체계성을 갖추면 학문으로 발전하는 뭐 그런 수순 아닐까. 그것이 역사와 정통성까지 갖춘 상태로 나아가려면 발견한 그 법칙이 여러 상황에 두루 적용되어 진가(?)를 인정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조금 강하게 얘기하자면, 결과를 까놓고서 덧붙이는 후천적인 분석에, 그런 접근 방식이 낳은 모든 방법론과 공식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걸 두고 우리는 고정관념이라 하지 않나. 물론 그렇다고 '고정관념을 탈피하자!'라는 또 다른 공식을 만들어내는 함정에 빠지는 것도 곤란하다. 그런 명제 역시 우연히 통념과 반대로 행동한 게 잘 먹혀들어간 사례들만 선별적으로 취합해 내린 공식일 테니.
공식 같은 건 없다는 게 공식이다. 만물은 변한다는 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언이듯.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다. 그렇기에 답은 스스로 결국 찾아야 한다. 모든 걸 혼자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믿으며 매 발걸음에 전심을 쏟으면 된다. 그 길 위에 필요한 방법과, 시기, 사람들은 가장 자연스럽고 적합한, 때로는 처음에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펼쳐지는 과정 전부를 즐기자. 롤러코스터를 타면 오르막길은 오르막길 대로, 내리막길은 내리막길대로 다 심장이 설레고 두근거린다. 삶이라는 롤러코스터도 그렇게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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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국력. 공감하는 바이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자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은 움직여야 한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달리기든 뭐든 일정 시간 이상 움직이는 운동을 꼭 해야 동물의 본질에 맞게 사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실외 달리기는 내 사주에도 맞는 운동이다. 넓은 땅 위에서 밝은 태양을 맞으며 온몸을 순환시킬 그런 운동이 달리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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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되려면 혼자 시작해야 한다. 혼자 해야 그 후에 누가 함께하면 반갑게 맞이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리듬과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누군가를 따라서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면 의존도가 높아져 혼자가 되었을 때 그 습관을 지속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 행위가 습관이 되지만 누군가는 그 사람과 함께하는 것에 더 방점이 찍힌 채 그것에 익숙해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은 관심과 응원만으로도 지속해 나가는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