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글
민경이랑 밥을 먹는데 배추김치를 가리키며 “얘는 샐쭉이라 맛없어.”라고 말한다.
응? 샐쭉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국어사전에서 ‘샐쭉하다’를 검색해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동사.
1. 어떤 감정을 나타내면서 입이나 눈이 한쪽으로 약간 샐그러지게 움직이다’ 혹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서 약간 고까워하는 태도가 드러나다
2.마음에 차지 아니하여서 약간 고까워하는 태도가 드러나다
하지만 민경이는 그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그가 말하는 샐쭉이는 김치에서 상대적으로 푹 절여지지 않아서 양념이 잘 베여있지 않고 숨이 덜 죽어 아삭한 식감을 가진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왜냐고? 나도 잘 모른다. 심지어 민경이도 모른다. 그냥 그게 샐쭉이란다. 그 뒤로 우리 둘 사이의 대화에서 샐쭉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민경이가 정의한 의미를 따른다. 생각해 보면 연애 초부터 민경이는 독특한 언어 습관이 있었다. 서로 톡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아슘’이 먹고 싶다고 한다. 응? 아슘? 칼슘도 아니고 아슘은 뭐지 싶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민경이만의 방식으로 줄여서 표현한 것이었다. 아무리 우리 세대가 줄임말이 익숙한 ‘별다줄’ 세대라지만 정말 그건 상상도 못한 방식이었다.
연애 초에는 흔히 고민할 때 쓰는 ‘흠..’이라는 표현 대신 ‘훔바리훔냥’ 이라는 무슨 마법 주문 같은 표현을 썼다. 이유는 역시나 없었다. 그냥 그 표현을 쓸 뿐이었다. 민경이의 이런 연금술과도 같은 ‘창조적인’ 언어 습관은 어머님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듯 보였다.
어머님은 민경이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똘만이’라는 별칭으로 부르신다고 한다(똘똘한 만경이의 줄임말). 민경이뿐만 아니라 민경이 밑으로 있는 여동생, 남동생 모두를 별칭으로 부르신다. 기껏해야 이름으로 부르거나 ‘아들~’하고 부르는 비교적 평범한 우리 가족과는 전혀 다른 방식에 처음 그걸 들었을 때는 과장 조금 보태어 컬처 쇼크(?)를 받기도 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짓는다는 ‘언어 결정론’은 이제 한 물 간 가설이라지만, 개인의 사고방식은 그가 쓰는 언어 습관에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민경이의 그런 언어습관은 규칙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보다는 자신만의 규칙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과 같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자신이 그렇게 부르고 싶으니까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성격이 소심하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민경이지만, 자신만의 표현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그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민경이스럽다. 그런 독특함에서 사람은 본인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다울 때 가장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법이니까. 정작 민경이는 내가 아무리 말해줘도 본인에게 그런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민경이의 행보는 여전하다. 얼굴에 난 뾰루지를 ‘알밥’이라고 부르고, 의도치 않은 내 농담에 가끔씩 자지러질 때는 꼭 ‘웃기게 하지 마’라며 요상하게 말한다. ‘(나를) 웃기지 마’ 혹은 ‘(나를) 그만 좀 웃겨’ 혹은 ‘웃긴 소리 좀 그만해’라고 해야 명확한 것 아닌가 싶지만, 민경이는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안정적(?)이란다. 이제 그 문장은 민경이가 빵 터질 때면 반드시 나오는 상징적인 표현이 되어버렸다. 나는 구태여 그 말을 더 명확하게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게 가장 민경이 다우니까.
그의 창조적인 언어습관은 순수함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맨 앞자리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토씨 하나 빠짐없이 받아 적으며 그대로 암송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해 볼 줄 아는 순수함 말이다. 순수함은 민경이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순수함을 잃은 사람이라면 김치에 양념이 절여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관심 자체가 없다.
민경이와 함께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길 위의 작은 풍경에서도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런 민경이의 눈에서는 초롱초롱 빛이 나는 것만 같다. 그의 그런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싶다. 이상한 언어 습관이라며 내 기준대로 평가하는 대신, 길 위에서 무언가에 시선을 돌릴 때 길을 재촉하는 대신, 자신만의 순수한 눈으로 작은 것도 자세히 볼 줄 아는 섬세한 시선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
어쩌면 그 독특한 관점이 있었기에 우리의 관계가 틀에 박히지 않고, 서로가 각자의 모습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순수함을 잃지 않은 민경이에게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도 민경이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