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결핍 발굴 본능

by 청윤 단남

나의 에고 ego가 몸부림치고 있다.

뭐라도 하라고.

어서 더 나은 사람이,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에고의 채근에는 조바심이, 그리고 그러한 조바심 아래에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모든 행위의, 에고가 촉발하는 행동들의 근본적인 동기는 결국 두려움이다.


그렇다. 나는, 정확히는 나의 에고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두려움이 아닐까.

생존과 관련된 것도 아닌데, 왜 유독 인간만이 그런 두려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인정'에 대한 욕구를 갖게 되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내 말이 별다른 효력도, 영향력도 없어지고, 나의 존재 자체가 그 누구의 삶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투명인간과 다를 바 없는 삶. 그런 삶을 살게 될까 봐 우리는 두려움에 떤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야생의 동물들도 그들만의 집단이 있고, 부모가 있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과 같은 종류의 두려움을 느낄까? 고립에 대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들도 느낄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들은 먹고살기에도 바쁘다. 눈앞에 먹을 음식이 있고, 나에게 위협이 되는 천적으로부터 안전하며, 몸뚱이를 뉘일 곳이 있으면 그저 만고 땡인 나날들 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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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점에서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먼 조상 격인 원시 시대의 인류에게는 '생존'만이 일생일대의 목표였을 테니까. 그러나 현대사회의 풍족함은 우리로 하여금 생존에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는 벗어난 세상을 가져다주었지만, 잠재적 위협을 계속해서 찾아내는 인간의 본능을 제거하지는 못한 듯하다. 인간은 다음 결핍을 발견해 내고야 말았다. 바로 정신적 충만함에 대한 결핍이다.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대한 입증.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나 자신이 가치로운 존재라는 징표. 그런 물리적 또는 개념적 징표가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난 인류의 다음 과업이 되고 말았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위협을 감지하는 원시 뇌의 메커니즘이 남아있는 탓에 우리는 끊임없이 불만족을 경험하기 쉽다. 다시 말해 인정 욕구 자체는 본능에서, 우리의 오랜 습관에서 기인했지만 그것의 대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허상의 개념에 불과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는 인류의 농업혁명으로 생긴 잉여 농산물의 분배와 관련하여 계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농업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한다. 권력층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질서'와 같은 상상의 체계들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를 더 잘 다스리고, 대중을 통일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모두가 따르도록 만드는 큰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에 해당하는 종교, 국가, 법률 등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엘리트 층이 피지배층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로 작용한다.



그렇다는 건 설령 우리가 좇고 있는 그 허구의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중요도'를 낮춘다고 해도 인간의 결핍을, 부족함을 찾아내고야 마는 본능이 작용하여 또 다음 대상을 찾게 될 것이란 말이다. 우리는 늘 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는 "우리는 불만족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랬듯이"로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 본능을 제거하려고, 본능과 싸우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그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본다.

그것들이 내 안에서 작용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본다. 그리고 상상의 산물을 믿을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을, 두려움에서 촉발되는 행동에 대한 동기를,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풀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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