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정도 됐으려나, 어느 날 저녁에 애인과 즉흥적으로 잠실에 놀러 갔다. 석촌호수의 멋진 야경을 두 눈 가득 넘치게 담으며 걷다가 우연히 웬 피아노 한 대를 발견했다. 무지개 빛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다리를 지난 곳에 위치한 '호수 위의 피아노'라고 이름 붙여진 그 피아노는 누구나 잠시 앉아서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쳐볼래?"하고 애인이 물었다.
나는 선뜻 '그래!'라고 힘차게 용기를 내어 대답하지 못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두려움에 휩싸여 온갖 말들을 시끄럽게 쏟아내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지 10개월 남짓 밖에 되지 않은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야, 네가 무슨 벌써 연주냐.'
'아직 준비도 안 돼서 틀릴 텐데.'
'사람들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사실이 아닌 소설. 그것이 마음속 목소리가 우리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걱정할 때 내는 '소음'의 정체다.
그렇다.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결코 그것이 사실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끝내 그 목소리에게 '조용히 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주가 아니라, 그냥 피아노 학원에서 늘 하던 연습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시끄럽게 구시렁거리는 마음속 '그 녀석'은 발로 뻥 차서 내 마음의 통제권을 쥐기 위한 '대기줄' 맨 끝자리로 추방시켜버렸다.
무대 공포증도 있고, 남들 앞에서 뭔가를 할 때 많이 떠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도전이었다. 쿵쾅대는 가슴을 뒤로한 채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요즘 연습하고 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irstmas Mr.Lawrence>를 치기 시작했다.
매번 익숙하게 치던 도입부였지만 그날만큼은 잘 되지 않았다. 원래도 악보를 잘 읽지 못해서 거의 보지 않고 치는 '암보(악보를 외워서 침)'를 하는 스타일이지만, 막상 그곳에 앉으니 머릿속이 하얘진 것이다. 안 그래도 떨리는데 잘 틀리지도 않던 부분에서 틀리고 멜로디도 생각이 잘 나지 않자, 잊고 있던 그 녀석이 다시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틀릴 거라고 했지? 쪽팔릴 거라고 했지? 얼른 자리에서 비켜 인마!'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음속 그녀석은 내가 틀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비아냥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워낙 커서 대기줄 뒤에 서있어도 목청 하나만으로 내 마음의 주도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 그대로 꾸역꾸역,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제법 몰입을 했던 것 같다.
스스로가 굉장히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시끄러운 마음속 목소리가 걱정했던 것들은 역시나 사실이 아닌 소설에 불과했음이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한 명의 피아니스트라도 된 것만 같았다.
삶이 곧 예술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전문가들이 연주하는 연주회나 배고픈 뮤지션들이 하는 버스킹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상도 못하고 준비도 되지 않았으며 실력도 어디 가서 내놓을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드러내 보는 것.
그날 석촌호수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로 인해 그날 호수 위에서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비록 그 감동이 내 잦은 미스터치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끊겼을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내가 자아낸 선율이 없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그 무엇일 테다(아니었다면 죄송하다ㅎ).
'진짜' 선율의 맛이라도, 그 오리지널리티의 극히 일부라도 끌어내어 표현해 낸다면,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아마 사람들은 그 무명無名의 연주자에게 감명을 받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