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바쁘게 사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내는 하루가 더 힘들 때가 있다. 자꾸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생산성에 대한 강박, 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개념을 고안해내고 그것을 믿는 것을 누구보다 잘하는 종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지닌 시대정신 역시 그런 허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익숙하게 지니고 있는 생각들 역시 하나의 시대정신일뿐. 같은 논리로 보면 빡빡하게 살지 않고 매 순간을 즐기며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사는 정반대의 삶의 태도 역시 하나의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라서 무엇이 그때그때의 주류인지를 중요하게 여길 뿐, 그 내용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과거에 유행했던 옷을 보고 기겁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 당시에 태어났다면 누구보다 멋지게 그 옷을 입고 다녔을 것이다. 더욱 우스운 사실은 만일 그 스타일이 갑자기 한 달 뒤부터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모두가 그 대세를 따르기 시작하면, 언제 질색을 표했냐는 듯 모두가 똑같은 스타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학적 오류의 기제에 대해서, 무의식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고서는 더 나은 삶,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춰 계속해서 자신의 색을 바꿔야 살아남는 카멜레온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카멜레온에게 보호색이 없으면 천적에 쉽게 노출이 되는 것처럼 인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 역시 주변의 색에 맞추지 않고 본인만의 색을 드러내면 주류 문화 수호자들의 따가운 눈총과 잔소리 그리고 비난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카멜레온처럼 생존에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남들의 방해 공작에 굴하지 않는 것뿐이다.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그저 남들 했던 대로 답습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고 방황도 많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과정에서 사람은 자기 색채가 점점 짙어지고 마치 복리가 불어나듯이 'J커브'를 그리며 성장한다. 그 결과 누구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오히려 경이로운 존재로 우뚝 솟아날 수 있다. 그때는 주류를 이루던 비난의 여론이 찬탄과 경미로 바뀐다. 그게 인간의 심리다. 돌을 던져도 남들이 던지니까 나도 던지고, 남들이 선행을 하면 자신도 그저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런 대중의 심리에서 자유로워지는 개인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돕는 것이 남들을 돕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밀물이 차면 항구의 모든 배가 뜬다는 말처럼 나의 행보로 인해 걱정을 하고, 비난을 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사람들도 던지던 돌을 내려놓고, 나의 변화를 감탄하며 지켜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슴속에 막혀있던 에너지가 댐을 뚫고 나오는 물처럼 폭발하는, 그래서 창조의 샘이 콸콸 쏟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영감'이다.
그저 자신의 길을 걷자.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자신의 길을 걷기만 해도 나는 나로 인해 변화를 경험할 모든 사람들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내뿜는 창조의 숨결이 주변과 세상의 공기를 점차 변화시키길 고대해본다. 그 믿음이 내가 무엇이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