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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an 17. 2022

[주간단남] 1월 3주 차 아침 생각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1.09 (일)



(..)

꿈 속의 나도 '내로남불'을 안 좋아했나 보다.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는 피지컬인데도 나는 의외로 굴하지 않고

'당신도 그러고 있으면서 무슨 권리로 날더러 그런 소리냐'며 대응을 했다.

등에 식은땀이 쫙 났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




22.01.10 (월)


(..)

무언가를 누군가의 삶의 일부가 되게끔 하려면 주변에 많이 보이게 해야 한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해서 본인의 인지영역 안에 들어온 무언가가 반복적으로 보이면 없던 관심도 생긴다. 그 관심은 물론, 표면적인 의식 차원에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본인은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노출에 대한 무심한 반응들이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새 넘치면, 우연한 계기를 만났을 때 한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

나를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동시에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집단은 부분의 합보다 크다지만,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전체에 대해서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2.01.11 (화)


(..)

사주든 타로든 이것은 단지 머리로만 외워서 하는 지식놀음이 아니다.

사주가 통계학에 기반한 학문이라 하지만 결국 삶에서 얻은 지혜와 직관이 발달한 사람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풀이나 의미를 넘어서 그것들 사이의 숨은 참의미를 읽어내고 인생사와 잘 결부시킨 리딩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




22.01.13 (목)


(..)

내게 이런 자유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며,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지켜가야 할 나의 특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나날들에서 감사함을 어느새 잊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으며, 가지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특권이 갖는 소중함을 잊고 산다는 것과 동의어다.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다는 것에, 밤새 심장이 멎지 않고 이렇게 또 하루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매일 아침 이렇게 고요 속에서 나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함을 아낌없이 표할 수 있을지, 감사함을 잊고 사는 이들에겐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 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함이라면 왜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없을까?

그것은 소멸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진 것에,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연 이것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오는 두려움. 모든 것은 변한다던데, 지금 이 행복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작은 깨달음. 그러나,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라 볼 수 없다. 니체가 했던 말처럼, 깨달음은 웃음을 동반한다. 허탈하고 허무하며 동시에 즐겁고, 자유롭다는 기분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 웃음이다.



(..)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진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선사할 때, 진정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누리는 권리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 때, 그때가 언제 닥칠지 노심초사 하는 대신 지금의 순간에 내가 가진것들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




22.01.14 (금)



(..)

우리는 살면서 꼭 갖춰야 하는 지식에 관해서는 등한시 해왔다. 학창시절 <가정>이라는 과목은 얼마나 관심도 못 받고 수능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명목상의 교육으로만 이뤄져 왔던가?


그 결과 현대인들은 나이가 먹고 본인이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고서는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어떻게 먹는 것이 건강한 것이며, 어떤 운동을 해야하고,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그런것들은 '세상'이 알려주는 것이라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

운 좋은 일부 사람만이 훌륭한 가정환경에서, 혹은 일찍이 자각한 중요성 덕분에 실질적인 관심을 갖고 제대로된 지식을 체득하며 살아 간다. 그러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미디어에 나온 유행하는 일시적이고 파편적인 정보,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에만 의존하며 살게 된다. 그들에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볼 시간도, 심리적 여유도 없다. 있다고 해도 인간의 주의를 끄는 다른 여러가지 사건 사고와 다른 관심사-대부분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신경쓰기 위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22.01.15(토)


(..)

내 안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관념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사실 구분의 의미가 없다. 대부분이 관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실과 이성에 의거해서 사고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믿음과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에 따라 대부분의 판단과 의사결정 역시 무의식적이다.



(..)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판단과 결정의 근거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자들처럼 통제된 환경에서 그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하려 하기보다는 그 가설을 세움과 동시에 결론으로 만들어 버린다.



(..)

이런 접근방식은 인간의 사고와 마음을, 즉 시야를 한정짓는다. 가설을 세우고, 동시에 그것을 믿어버리는 순간,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지각 체계엔 언제나 그 가설이 BGM처럼 재생되면서 세상을 그 가설에 맞도록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프리즘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그 가설에 반하는 사례는 쉬이 발견하지 못한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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